[시론/김구섭]종전선언보다 북핵 폐기가 먼저다

  • 입력 2007년 7월 23일 03시 04분


코멘트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문제로 교착되었던 6자회담이 재개될 기미를 보이고 북한이 중유 5만 t을 받는 대가로 영변 핵시설의 폐쇄 의사를 밝힌 이후 북핵 문제의 해결에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이런 가운데 대형 안보 이슈가 현안으로 등장했는데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 문제와 6·25전쟁의 종전 선언 및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 등이다.

관심의 초점은 한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종전 선언이 이뤄지고 북핵 폐기를 보장받으며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화해협력 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지만 북한 체제와 정책의 본질적 변화를 통한 냉전구조의 해체와 평화 공존을 달성하기는커녕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상회담이 정치 군사적 신뢰를 제고하고 시급한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거에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는 없다. 오히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의 기대 심리가 상승하면서 안보적 경각심을 놓는 역기능적 측면을 염두에 두면서 추진해야 한다.

종전 선언만으로 북핵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도 지나치게 낙관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6·25전쟁의 성격 규정과 전쟁 종결 문제는 물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에서도 북한의 주장은 너무나 부당하고 허구에 차 있다.

북한은 여전히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인식하며 남한을 미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북한의 속셈은 북-미 간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끼리’ 내전을 거쳐서라도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예멘은 정치지도자의 합의로 통일을 이룩하고서도 양측 군대의 무력 충돌이 내전으로 확대됨으로써 결국 무력으로 통일 문제가 완결됐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북한은 과거 정전협정에 한국이 서명하지 않았고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및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로 한국 정부에 자율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상대방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예에서 보듯 북한과 함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기는 힘들다. 설사 이런 문제를 북-미가 주체가 되어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에는 안보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북한 핵 문제는 근원적으로 풀기가 어렵다. 북한의 김정일에게 핵무기는 체제 내부를 결속시키고 정권 안보를 보장하는 보루이며 한국의 대북 흡수통일 기도를 차단하고 통일 문제를 주도할 수 있는 수단이다. 미국을 상대로 당당하게 직접 담판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우선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한 간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및 군비 통제를 추진한 뒤 명시적인 전쟁 종결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물론 이의 이행을 보장할 평화보장기구를 마련해 평화가 항구적으로 정착될 때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의 공조 아래 대북 종전 선언을 제의하는 것은 대북 화해 의지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전환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종전 선언은 어떤 경우라도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북핵 폐기 일정에 맞춰 접근하는 인내와 혜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김구섭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