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 주장과 제시한 증거, 비교해서 결론내는게 일반적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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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행과 한계

검찰은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의 명예훼손 고소 고발 사건 3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하면서 ‘적극적인 실체적 진실 규명’이나 ‘국민의 선택 기준 제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통상적인 명예훼손 고소 고발 사건 수사와는 다르게 이번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통상적인 명예훼손 사건에서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지를 가리기 위해선 사실관계가 어떠한지를 파악하고 조사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는 ‘실체 규명’을 강조하고 있어서 수사 범위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 선을 넘어서서 이 전 시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광범위하게 검증하는 데까지 번질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이 전 시장 측과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통상적인 사건 수사 때 고소·고발인을 먼저 불러 상대방의 거짓 주장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는지, 아니면 사실이기는 하지만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묻고 이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출받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소인 측은 상대방의 주장이 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마치 민사재판에서 소송을 낸 쪽에 입증 책임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고소·고발인이 낸 자료가 충분치 않을 때에는 추가로 자료를 요구하거나 참고인을 불러서 조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피고소·고발인을 불러 조사하고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받은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원할 때에만 처벌하는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주장과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 자료를 비교함으로써 어느 정도 진실이 가려졌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은 추가 수사를 하지 않고 결론을 내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밝혀 혐의를 확정하는 데 꼭 필요한 자료인데도 고소·고발인들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울 때 검찰은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등 강압 수단을 예외적으로 동원하기도 한다.

한 중견 검사는 “예를 들어 일반인은 다른 사람의 금융거래 자료를 개인적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 사건 해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계좌추적을 하는 사례가 드물게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강제수사를 해야 할지는 고소 고발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지와 사안의 중대성을 종합해서 사안별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이 전 시장 관련 명예훼손 고소 고발 사건에 대해 검찰은 차기 대통령 선출이라는 국가적 중대사가 걸려 있는 사안이고, 시급하게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기본적인 성격이 명예훼손 사안인 만큼 검찰의 적극적인 실체 규명 수사 방침이 자칫 법정신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돈 고려대 법대 교수는 “법리적으로만 따져 봤을 때 형량이 그리 높지 않은 혐의의 사건에 대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까지 한다면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죄에는 대개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이 선고된다. 비례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혜택을 줄 때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법 원칙으로, 고소 고발 사건에서도 고소 고발 내용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과잉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전상화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진위나 실체를 가리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발언이나 주장이 사실이냐 허위냐를 따져 가중처벌을 할 것인지를 가리려는 것이지, 발언 내용에 담긴 별도의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수사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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