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비밀자료’ 누가 왜 퍼뜨리나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코멘트
‘검은손’과 폴리크라트(정치 공무원·Politician+Bureaucrat) 은밀한 거래?

수사기록 등 일반인은 접근 힘든 비공개자료 떠돌아

한나라 “의혹 부풀려 교묘히 유포… 실세가 공작 개입”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검토한 37쪽짜리 보고서가 정부 관계기관인 수자원공사의 김상우 기술본부장이 유출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수자원공사 외에도 적지 않은 정부 부처 혹은 정부 관계기관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박근혜 전 대표의 공약인 열차 페리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한 것이 밝혀지면서 야당 대선주자에 대한 정권 차원의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증폭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거래, 세금, 수사기록 등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대선주자 관련 자료들이 교묘히 가공돼 비방과 폭로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이 같은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정권 실세 차원에서 야당 대선주자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그동안 치밀하게 기획된 프로그램이 이제 막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캠프에서는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손바닥 보듯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권 실세가 아니고서는 이런 공작정치를 기획할 수 없을 것”이라며 “2002년 대선에서 네거티브로 재미를 본 ‘검은손’이 또다시 ‘야당 후보 죽이기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 같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권 차원에서 네거티브 기획”=이 전 시장 캠프의 기획본부장인 정두언 의원은 24일 “정부 기관들이 일제히 ‘대운하 죽이기’에 가세한 데 이어 8일에는 금융감독원이 (주가 조작에 관여한) BBK에 대한 조사 결과를 총리실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 정권이 전방위로 야당 후보 경선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또 “언론에 보도된 이 전 시장의 부동산 거래 관련 의혹도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개인 정보를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검은손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표 측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고(故) 최태민 목사와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 제기 뒤에 ‘검은손’이 있다는 판단이다. 박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최근 한 월간지에 보도된 최 목사 관련 의혹의 근거 자료들 중에는 정보기관에서나 가지고 있을 내용도 많았다”며 “해명이 끝난 일인데도 반복적으로 교묘하게 의혹 부분만 부풀려지고 있어 배후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검은손’의 행동대장은 ‘폴리크라트’?=얼마 전 한 대선주자 캠프 회의에서는 “경제 관련 부처 내에서 대선주자 공약들을 검토한 각종 내부 보고서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공무원들이 자신의 지지 성향에 따라 주요 대선주자의 공약을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어 돌려 보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은 정권 연장을 위해 네거티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검은손’이 정치 공무원인 ‘폴리크라트(Policrat)’와 정보기관 등을 동원해 뒷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현 정부에서 실세로 활동했던 공무원과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들은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면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 권력 실세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과 자금력을 활용해 야당 대선주자의 약점을 파악한 후 보고해 공을 세우면서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이 전 시장의 위장 전입 의혹을 처음 제기하며 공개한 주민등록 이전 이력이나 한 일간지에 보도된 이 전 시장의 충북 옥천군 임야 및 서울 서초구 양재동 건물 매매 관련 내용은 정부 전산망에 접근할 수 있는 관계부처 또는 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정보기관 등의 협조가 없으면 입수가 불가능한 것들이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조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정권 주변인물이나 범여권의 특정 대선주자와 친분이 있는 공무원들이 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잡지를 통한 언론 유출 방식이 일반적”=한나라당 대선주자에 대한 정보와 첩보는 ‘확실한 정보’와 ‘근거가 불명확한 소문’이 다른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비교적 근거가 있는 내용은 범여권 인사의 입을 통해 직접 폭로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안은 주간지 등에 흘려서 이슈로 만들어 신문 방송이 따라오게 만드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것. 정부의 ‘대운하 보고서’의 내용이 처음 공개된 것도 한 경제주간지를 통해서였다는 점을 한나라당에선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 정보 당국자는 “범여권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적으로 야당 후보 낙마를 기획하는 ‘검은손’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2002년 대선 때는

설훈의원 - 김대업씨 허위사실 유포

정부, 자료의 진위여부 확인 안해줘

2002년 대선 때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향해 파상적으로 제기됐던 네거티브(비방·폭로)의 배후에는 거대한 숨은 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해 4월 민주당 설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의 측근 윤여준 의원이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에게서 20만 달러를 받았다.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병역브로커 출신 김대업 씨는 같은 해 5월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이 후보의 아들 정연, 수연 씨의 병적기록부가 위변조됐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1년 9개월간 복역했다.

민주당 전갑길 의원은 같은 해 10월 대정부질문에서 기양건설이 1997년 대선 직전 이 후보 부부 등에게 80억 원을 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기양건설이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에게 10억 원을 줬다는 보도가 한 시사주간지에 실렸다. 그러나 결국 모두 허위임이 드러났고 주간지에 의혹을 제보했던 김모 씨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2년 당시 네거티브에 활용된 자료의 출처와 유통 경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논란이 됐던 자료나 폭로의 진위에 대해 확인해 주지 않았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당시 민주당과 친여 성향 매체들의 네거티브 공세 뒤에는 모두 정치공작을 움직이는 ‘큰손’이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며 “이 후보의 도덕성에 관한 허위사실들을 정치인과 친여 성향의 언론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유출함으로써 결국 이 후보를 낙마시켰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