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나 대신 한나라와 각을 세우라…내게 줄서라”

  • 입력 2007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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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6월 월례강연회에서 특별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6월 월례강연회에서 특별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특강은 장장 4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정치, 경제, 안보, 언론 등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 특유의 거친 화법으로 격정적으로 연설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한편 한나라당의 대선주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공약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특히 박 전 대표에게는 ‘독재자의 딸’이라며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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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천정배 의원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도 깎아내렸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는 극찬하는 등 특유의 ‘편 가르기’ 화법을 구사했다.

노 대통령은 “매일매일 언론한테 얻어맞다가 오늘 저 혼자 아무도 안 말리는 데서 일방적으로 한번 해 보니까 기분 좋네요”라며 들뜬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마라톤 연설을 하면서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꼈는지 “계속 박수치면 시간이 자꾸 가서 내가 초조해진다” “빨리 읽겠다”고 말하는 등 조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1000여 명이 모인 강연장에서는 무려 100여 번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와 마치 대선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포럼 회원 외에 일반 시민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 ‘그들만의 축제’로 그치고 말았다.》

이날 발언은 2004년 국회에서 탄핵 결의 때 한 발언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과 함께 불법적인 대선 개입 논란을 부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해 “책임 있는 대안은 거의 내놓은 일이 없는 무책임한 정당”이라며 “정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좀 끔찍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그 당의 후보 공약만 봐도 창조적인 것이 거의 없고 부실하다”며 “막연히 ‘경제를 살리겠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전략 없는 공허한 공약”이라고 깎아내렸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한나라당 집권 및 대선후보의 부당성’을 특정한 것이어서 선거법 위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언론에 보도될 것을 충분히 예측한 가운데 나온 ‘기획성’ 발언이라는 점도 문제다.

그는 박 전 대표에 대해 “열차 페리 구상은 타당성 없다고 결론 내린 사업” “해외 신문에 한국의 지도자가 다시 독재자의 딸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나면 곤란하다”고 공격했다.

이 전 시장의 ‘대운하’ 공약에 대해서는 “제정신 가진 사람이 투자하겠나” “정부가 균형발전 사업을 하는데 여기다가 대운하 사업까지 같이 엎어 놓으면 틀림없이 자재 파동 난다”고 문제 삼았다.

또 두 주자의 ‘7% 경제성장’ 공약과 관련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제를 자꾸 살린다는데, 무슨 주사와 약을 놓을지 불안하다”고 공격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제2의 탄핵’을 유도하기 위한 정략적 기획 발언의 성격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백보 양보해도 다른 사람은 과거 인연이라도 있지만 손학규 씨가 왜 여권인가. 이것은 정부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열린우리당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 등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장관을 지내고 나서, 그것도 감정 상한 일도 없는데 오로지 대선 전략만으로 차별화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비난했다. 또 이들을 향해 “나 대신 한나라당하고 각을 세우라”며 “지지율이 올랐으니 다시 (나에게) 줄을 서라”고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친노(親盧·친노무현)’계 대선주자인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혁규 의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라며 “국민의 정부와 똑같네 뭐”라고 김 전 대통령과의 일체감을 과시했다.

그는 “국민의 정부 정책을 다시 보면서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DJ를 치켜세웠다. “대통합과 후보단일화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 더 안전한 전략”이라고 말한 것도 김 전 대통령이 “단일 정당화가 잘 안되면 후보단일화라도 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DJ-노무현’ 연대론을 공고하게 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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