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생명줄 核’ 포기할까…북-미 해빙무드 어디까지

  • 입력 2007년 3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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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갈 비료 9일 울산의 한 비료생산공장에서 공장 관계자가 북한에 지원될 비료가 제대로 쌓였는지 점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남북 합의에 따라 비료 30만 t을 지원해 달라는 전화통지문을 남측에 보내왔다. 울산=연합뉴스
북으로 갈 비료 9일 울산의 한 비료생산공장에서 공장 관계자가 북한에 지원될 비료가 제대로 쌓였는지 점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남북 합의에 따라 비료 30만 t을 지원해 달라는 전화통지문을 남측에 보내왔다. 울산=연합뉴스
6자회담 2·13합의 이후 한반도의 외교안보 정세가 6·25전쟁 이후 가장 큰 변혁을 맞고 있다. 반세기 동안 숙적이었던 북한과 미국은 최근 뉴욕에서 양자회담을 갖고 관계개선 및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양국 관계에서 볼 수 없었던 진전이다.

2·13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경우 냉전의 마지막 지대인 한반도에 평화체제 수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도 크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과연 이룰 수 있는 목표인가, 아니면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인가.

○ 북한 핵으로 살아났나

핵무기 개발로 국제무대에서 철저히 고립됐던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으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셈이 됐다. 미국이 군사적 압박 대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북한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북-미 관계 개선의 계기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어놨던 북한 자금을 풀어주기로 했고 중유 100만 t에 해당하는 대북 식량 및 에너지 지원에도 동의했다. 그 대가는 핵 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다.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포함돼 있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북한과 평화협정 및 대사급 수교까지 맺을 태세다.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에서 외교적 성과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내에선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최 이전에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절차를 마무리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 북한 핵 폐기 의사 있나

낙관론자들은 북한에 체제 안전과 에너지 지원만 보장하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내다본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일본 오사카 경제법과대 객원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보장하고, 6자회담 참가국들이 경수로를 먼저 제공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의 핵 보유는 대남 전략상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며 “북한이 지금 협상 테이블에 나오고 있는 것은 폐기하기로 한 영변 원자로 외에 숨겨 놓은 핵 시설을 계속 가동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평화체제 가능할까

북한은 평화협정의 상대로 미국을 주장한다. 2004년 5월 한성렬 당시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평화협정을 제의한 적이 있지만 북한의 속내는 북-미 양자구도를 굳히기 위한 들러리로 한국을 세우려는 것이란 지적이 많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평화협정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이르면 4월 말이나 5월 초로 예상되는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포럼의 구성 문제를 놓고 관련국들 간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의 뜻대로 4자 포럼이 출범하더라도 걸림돌은 많다. 미국은 핵 폐기가 완료된 후 평화협정을 맺겠다는 생각이지만 북한은 평화협정이 핵 폐기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또 한미동맹을 흔들기 위해 평화협정에 주한미군 철수 조항을 넣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분리해 대응할 방침이기 때문에 북한이 요구를 굽히지 않을 경우 평화체제 논의가 깨질 가능성도 있다.

○ 한국 소외당하지 않을까

한국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미국은 지난해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을 본 뒤 미중관계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며 “미국과 중국이 연대해 (한반도의 장래에 관해) 방침을 정한다면 거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이 북한과의 줄다리기에 지칠 경우 핵 시설 폐기에 만족하고 과거에 개발된 핵무기의 보유를 눈감아 준 뒤 평화협정을 추진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이 만약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 탄두와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평화체제를 논의하고 북-미 수교를 약속한다면 한미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꿈이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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