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1년 남기고 당정협의 마비 사태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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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수두룩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설 물가대책 확대당정협의회. 열린우리당 의원 다수가 참석하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다. 강봉균 당시 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탈당 등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자리가 비었다”며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측 9개 관계부처 장차관에게 양해를 구했다. 연합뉴스
빈자리 수두룩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설 물가대책 확대당정협의회. 열린우리당 의원 다수가 참석하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다. 강봉균 당시 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탈당 등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자리가 비었다”며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측 9개 관계부처 장차관에게 양해를 구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1년이나 남겨 두고 당정 간 정책협의가 사실상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등 당 분열 사태가 진행되면서 민생 정책 및 법안 처리 등을 위한 당정 조율이 ‘정치권 새 판 짜기’의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5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산적한 민생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도 불투명하다.

더구나 이번 주 중 예상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여당이 원내 2당으로 전락하면 당정간 유례없는 혼선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여당은 5일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 당정회의를 열 예정이다. 통상 고위 당정회의에는 당 측에선 의장,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해당 정책조정위원장 등이 참석하지만 최근 열린우리당 분열 사태 등으로 정책위 쪽은 참석 여부가 불투명하다.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은 4일 “지난달 말 임기가 끝났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번 주에 탈당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제2정조위원장이던 이근식 의원도 “임기가 끝나지 않았느냐. 회의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전임 정책위 당직자들은 임기가 끝난 데다 각자 탈당 문제 등으로 손을 놓고 있고, 후임자는 14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의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책위의 기능에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4일 “지금 우리가 당정협의에 관심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많은 의원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탈당을 할 것이냐, 그냥 당에 남아 있을 것이냐, 탈당한다면 언제 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달 26일 설 물가안정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확대 당정회의 때 정부 측에서는 권오규 경제부총리 등 9개 부처 장차관과 공정거래위원장이 출석했지만 제 시간에 맞춰 출석한 열린우리당 인사는 4명뿐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실상의 당정 조율 마비 상황이 앞으로 1년 내내 지속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역대 정권의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나타났지만 최근의 여권 상황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당정 조율 기능 저하를 가져온 사실상의 집권 여당 부재 상황은 열린우리당이 이번 대선이나 내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이름으로 심판받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무책임이 당정 조율 기능 마비라는 또 다른 ‘책임정치 실종’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두세 개로 쪼개지면 정부와의 정책 협의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특정 정책에 대한 여야 협상은 어떻게 이뤄질지 의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열린우리당은 1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탈당 사태를 겪으면서 원내 제1당의 지위를 한나라당에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 제2당으로도 당정 간 정책협의는 계속할 수 있지만 5, 6월경 계획대로 열린우리당 잔류 의원들이 당 해산을 결의하고 ‘대통합신당’ 창당에 성공한다면 당정 관계는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집권 여당이 아예 사라지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또 다수가 탈당하고 소수의 당 사수파만 열린우리당의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어느 경우가 됐든 정부로서는 누가 여당인지, 어느 당과 정책협의를 해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기우 신임 열린우리당 원내공보부대표는 “노 대통령이 우리가 신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의견 표명이 있지 않겠느냐”며 “중립적으로 국정 운영을 하겠다거나 신당에 여당 지위를 주겠다는 등 당정 관계 설정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혼란 상황에 빠진 가운데 노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개헌 등의 정치 이슈 및 굵직한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이 도리어 당정 조율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당정 조율 기능이 극도로 떨어진 가운데 (노 대통령이) 군 복무기간 단축이나 제2의 국토균형발전 계획과 같은 굵직한 정책 어젠다를 제기하고 있어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노 대통령은 자기 임기뿐 아니라 임기가 끝난 뒤에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국정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대통령은 마음을 비우고 남은 1년 동안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 갈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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