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정체성' 공방 확산… 내분 조짐

  • 입력 2007년 2월 2일 1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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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대선주자의 이념문제로 시작된 한나라당의 '정체성' 공방이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의 1차원적 논쟁을 넘어 당내 심각한 균열과 갈등 조짐이 나타나면서 자칫 '내분'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원희룡 고진화 의원이 '이념공세 기획설'을 제기하며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 당내 정체성 공방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고 의원은 김용갑 의원의 경선포기 종용 발언에 대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정체성 논쟁이 당내 경선국면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주목된다.

김용갑 의원으로부터 경선포기를 종용받은 원희룡 의원은 2일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경선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선거법 위반 아니냐"며 "반공을 모든 잣대로 삼는 수구로 회귀하자는 것이냐"고 따졌다.

그는 특히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판결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특정인사와 가까운 분들이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이념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한 뒤 "당내 주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나 대선주자들은 이념공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원 의원은 "2004년 탄핵 정국에서 박 전 대표가 당의 변화를 약속하고 대표에 취임했으나 정수장학회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니까 개혁과 변화는 제쳐놓고 전면적인 색깔론에 돌입한 적이 있다"며 박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문제삼기도 했다.

고 의원은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 지도부에 정체성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로 했다.

고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불공정 경선 유발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 문책을 당에 요구하고, 만약 집단적 '공작정치'로 드러난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면서 "이번 이념공세는 의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 지도부에 '경선포기'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질의할 계획"이라며 "원희룡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만나 공동대처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경선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맹형규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누구는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경선준비위에서 정체성 논란을 다룰 지 여부에 대해서는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다룰지 여부를)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용갑 의원은 "원희룡 고진화 의원은 자신들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분수'를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출마는 사실상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격'"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념공세 기획설에 대해선 "전혀 아니다"고 일축했다.

박 전 대표 측도 "그 당시의 국가정체성 공방은 국보법 폐지 등 현 정권의 좌파 편향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문제 제기를 한 의원들과 논리 대결을 펼치지 않고 엉뚱하게 박 전 대표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때 아닌' 이념논쟁에 대해 당내에선 당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작년 대표 경선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색깔론이 나오고 있는데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아닌가 싶다"면서 "당의 단합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염려를 끼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문제를 윤리위에서 심의할지 여부에 대해선 "정치적인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한 초선의원은 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인 유석춘 연세대 교수의 '고진화 탈당' 발언을 문제 삼아 "당의 자강운동과 외연 확대에 주력해야 할 참정치운동본부가 이념공세에 앞장 선 듯한 모양새"라며 "당 공식기구가 당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이런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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