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지역주의 낙인찍어 통합신당 김빼기

  • 입력 2006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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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앞쪽) 등이 30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제 기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앞쪽) 등이 30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제 기자
“나는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통합)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을 지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를 정조준했다.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한 당적 포기 시사 발언이 ‘정기국회 후 탈당’하는 것처럼 비치자 차단에 나선 것. 대통령이 여당 내 통합신당 논의를 공개 비난한 것은 처음이다.

▽“신당은 지역당” 반격=노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때도, 1995년 통합민주당 분당 때도 나는 지역당을 반대했다. 그리고 지역당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지지했다. 다시 지역당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역당으로는 어떤 시대적 명분도 실리도 얻을 것이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한 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에게 이를 공개토록 했다.

열린우리당 내 다수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낙인찍은 것. 어떻게든 명분을 살려 통합신당을 만들고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려던 통합신당파에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는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당적을 유지하는 것이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탈당을 하는 것이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고 했다.

‘당적 유지가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말은 대통령을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열린우리당의 자산은 가져가겠다는 통합신당파의 의도를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굳이 민주당과 통합하는 식의 신당을 하려면 열린우리당을 떠나서 하라는 통첩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평소 친노(親盧) 그룹이 ‘나갈 사람은 나가라. 당은 우리가 지킨다’고 했지 않나. 그런데 노 대통령이 탈당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친노 그룹이 곤혹스러운 형국에 몰리니까 이를 서둘러 교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당을 지키는 데 탈당이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발언은 정계개편이 열린우리당의 정통성을 허무는 ‘헤쳐모여’ 방식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대통령의 ‘철학’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경우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라는 것.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계개편이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이뤄지면 대통령은 ‘그래, 나를 밟고 가라’고 살신성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들끓는 열린우리당=노 대통령의 발언은 통합신당으로 새 출발 하려는 당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여당의 재집권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불만과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석현 의원은 “개혁 야당하자는 얘기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했고, 선병렬 의원은 “통합신당의 모습을 아무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미리 지역당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폄훼”라고 말했다.

김동철 의원은 “열린우리당 다수 의원이 원하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하는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도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통합신당파는 사실 신당의 명분을 어떻게 세울지 고심해 왔는데 ‘내부자’인 노 대통령이 ‘신당=지역당’이라는 딱지를 붙이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반면 강기정 의원은 “신당은 결국 민주당과 통합인데 그 자체는 도로 민주당 아니냐”며 “노 대통령이 말한 그 부분은 맞다”고 말했다.

통합신당파는 앙앙불락하면서도 고심하는 기색이다. 통합신당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다수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집단 탈당을 감행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의 명분도 약하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탈당했다가 오합지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파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당 사수파와 통합신당파의 전선(戰線)을 명확히 그었지만 양측이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지루하게 되풀이되면서 정계개편 논의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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