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정당→실험 정당…김한길 연설 파장, 여당 말바꾸기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1분


코멘트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7일 국회본회의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정치실험’에 비유하며 “이제는 정치실험을 마감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김 원내대표 측은 열린우리당이 창당과 함께 도입한 기간당원제 등의 ‘실험’이 결국은 실패로 끝났음을 고백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으나 당 안팎에는 집권여당이 국민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여당 내부에서부터 비판이 나온다. 신기남 의원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실험?”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국정운영이란 막중한 사안을 놓고 실험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 대단히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현재의 국정혼란에 대한 정부여당의 무한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에게 끊임없이 짝사랑을 바쳐 온 우리당이 처절하게 실연당한 셈이다. 우리는 오로지 국민께 사랑받기 위해 변화를 추구해 온 사람들이다. 억울한 심정”이라고 말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5월 18일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풍토가 바뀌지 않는 것은 국민의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란 글을 내놓은 일이 있다.

실패를 국민 탓으로 돌리는 이 같은 정부 논리와 김 원내대표의 주장이 다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여당의 ‘몰염치’를 보여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04년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어 승리했을 때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을 보여 준 쾌거’라며 국민을 칭송했던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김형준 교수는 “국민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무지한 국민을 가르쳐야 한다는 계도민주주의의 오류”라며 “코드, 아마추어리즘이란 방식이 틀렸다면 방향도 틀린 것인데 ‘방향이 옳으면 방식도 옳다’는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 측이 ‘정치실험’이라고 지칭하는 당-청 분리, 기간당원제 및 상향식 공천제 도입 등은 열린우리당이 창당 때부터 도입한 ‘열린우리당 식 개혁’의 상징들이다.

당-청 분리 방안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이 당 총재를 맡지 않은 최초의 여당이 됐으나 이로 인해 여당이 국정에 개입할 통로가 줄었다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불만이다.

상향식 공천제는 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를 가속화했다는 것이 솔직한 토로다. 지도부가 공천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지면서 소속 의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것이 국민에게는 기강해이로 비쳤다는 것. 기간당원제의 경우엔 당비 대납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종이당원’ 논란을 양산해 이미 개폐가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실험’을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국민에게 ‘세일즈’해 왔다. 상향식 정당, 탈권위주의 등은 열린우리당의 창당 명분이기도 했고,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하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 이제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그런 ‘정치실험이 문제였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당의 정체성과 방향성, 국정운영 능력 부족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결과라는 점에서 기간당원제 등 방법론의 문제를 탓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정치학 교수는 “국정 능력, 철학 등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으면 신장개업을 해도 결과는 또 다른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고 냉소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한나라 “개헌 빌미 정계개편 정당화 속셈”
민주 “국민에 용서 빌고 당 간판 내려라”

야당들은 7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의 국회 대표연설에 대해 “국정 실패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그 책임을 야당과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술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개헌론은 개헌을 빌미로 정계개편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며 “북핵 사태 등 안보 불안이 고조된 상황에서 국론을 양분시켜 국가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헌은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면 그 후보들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국민 동의를 받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전재희 정책위의장은 “김한길 원내대표가 안보와 경제에 몰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권 연장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총체적 실정에 대한 반성은 찾아 볼 수 없고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자성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개헌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나 대변인은 “사학법을 날치기한 정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야당 탓으로 돌리고 헌정을 유린하면서 밀어붙인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무산을 한나라당의 전횡으로 돌리는 발언은 책임 떠넘기기의 달인답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정치실험이라고 규정한 것은 국민을 정치실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에 불과하다”며 “철저한 반성과 진솔한 사과로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고 정기국회가 끝나면 바로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원내부대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열린우리당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논평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