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안보관 정치상황 따라 오락가락”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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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깨지지 않았으니 북핵 위협을 과장하지 말라’는 취지의 노무현 대통령의 2일 발언에 대해 정치권과 안보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안보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안보를 팽개친 대통령이라는 식의 거친 비난이 봇물 터지듯 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북핵 관리에 실패한 장본인이고 평화를 관리할 능력도 대비책도 없는 사람”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을 호도하고 안보 불감증을 만연시켜 북한에 이로운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재철 홍보기획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한쪽에선 ‘반미면 어때’라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미군은 철수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국제관계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철없는 생각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청맹과니의 인식”이라고도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북한 핵실험으로 국민은 밤잠을 설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는데 핵이 별것 아니라니, 도대체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국군통수권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개탄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체로 코멘트하기를 꺼렸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명자 의원은 “대통령 발언의 정확한 맥락을 모르겠다”며 피해 갔고,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말하지 않겠다”며 입을 닫았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유재건 의원은 “노 대통령이 안 믿는 것을 거짓으로 말하는 분은 아니니 지금이 위기라고 정말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라며 “그런데도 입만 열면 욕을 먹으니 대통령이 안됐다”고 말했다.

국방 전문가들도 대통령의 인식이 사실과 다른 것은 차치하고 그 발언이 국내 정치용으로 나왔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핵무기는 살상률이 매우 높은 군사적 효용성, 다른 재래식 무기에 대한 투자비를 엄청나게 줄여 주는 경제적 효용성, 보유 자체만으로도 상대를 주눅 들게 하고 협상에서 물러서게 만드는 정치적 효용성이라는 3가지 효력을 갖고 있다”며 “따라서 핵실험은 남북 관계에 당장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은 핵실험 직후엔 포용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해놓고선 또다시 뒤집는 등 일관된 안보관 없이 그때그때의 정치적 처지에 따라 시류에 영합하거나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시시각각 시각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은 호남 유권자와 열린우리당 지지자를 향해 ‘현 정권은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국내용 제스처”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대통령이 핵무기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텐데, 어떤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지 궁금하다”며 “그저 놀라울 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결국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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