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포용정책 사실상 ‘사망선고’

  • 입력 2006년 10월 9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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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오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북한에 대한 강압정책보다는 협력과 지원이라는 ‘햇볕’을 쪼여야 북한체제가 스스로 변해 남북이 통합의 길로 갈 것이라던 대전제가 모두 그릇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프로그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작된 2차 북핵 위기 이후 그 효용성이 끊임없이 의심받아 왔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

선의의 대북 지원을 계속해 온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해 왔으며 이를 핵무기화하는 최종 단계인 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달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던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논의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사실상 좌초됐다.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안팎으로 그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6일(미국 시간)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유엔헌장하의 책무에 부합되게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핵실험이 실제로 이뤄진 만큼 대북 제재 논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상황 변화를 절감한 듯했다. 그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지금 상황에서 포용정책만 계속하자고 말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에 중대 변화가 예고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당장은 현재 진행 중인 북한 수해복구 지원물자의 수송 작업의 계속 여부와 민간 주도 경협의 양대 축을 이루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이 정부 정책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은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비한 대응체계를 여러 차례 점검해 왔다”며 “여야 지도자 면담 등 국내적 협의 과정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조율된 조치를 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수해 지원, 개성공단사업, 금강산관광 등 개별 사안에 대해서도 구체적, 종합적으로 상황을 검토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정책을 근본에서 검토한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제2의 핵실험 등 북한이 추가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 또 김대중 정부 이후 6년간 쌓은 포용정책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6년 이상을 지속해 온 대북 화해협력정책 자체가 위기를 관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의 수위에 따라 정부의 대응 기조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7월 5일 미사일 발사 이후 채택된 유엔 결의문(1695호)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민간 상거래를 중단하라는 뜻은 아니다’라는 해석을 유지했다. 하지만 유엔이 이번에 일반적인 상거래까지 포함되는 결의안을 낼 경우 정부도 비켜갈 명분이 없다.

국내 여론의 악화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정부는 이제라도 대북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공식 선언하고 통일안보 라인의 책임자를 전면 교체해야 한다”며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사업의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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