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예산처 계산기’는 꼼수도 계산하나

  • 입력 2006년 9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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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는 내년 나라 살림 규모가 예산과 기금을 합한 총지출 기준으로 올해보다 6.4% 늘어난 238조5000억 원이라고 27일 발표했다.

그러나 예산안을 들여다보면서 의문점이 생겼다. 예산증가율 비교의 기준이 되는 올해 총지출 규모에서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본예산이 빠져 있었다. 예산처가 밝힌 6.4%의 증가율은 수해(水害) 복구를 위한 긴급 편성액이 더해진 추가경정예산의 총지출(224조1000억 원)과 비교한 것이었다.

별도로 추가 취재를 해 보니 올해 본예산 총지출은 222조 원이었다. 이와 비교한 내년 예산증가율은 정부 발표보다 1.1%포인트 높은 7.5%가 된다. 내년 예산이 ‘경기 중립적’이라는 장병완 예산처 장관의 말과 달리 ‘팽창 예산’의 성격이 짙다.

내년 예산안은 추경은커녕 아직 국회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 더구나 정부가 올해까지 9년 연속 추경을 편성한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재정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소한 본예산과 추경예산을 함께 공개하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로 1년 전에 정부가 2006년 예산안을 발표할 때도 2005년 추경 전후(前後)의 예산과 비교한 두 개의 증가율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같은 변칙 셈법이 왜 나왔을까. 아마 국가채무가 내년에 300조 원을 넘어서는 재정 악화 상황에서 ‘빚내서 복지 예산에 쏟아 붓는다’ ‘팽창 예산이다’ 등의 쓴소리를 피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조금이라도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주장하고 싶었겠지만 너무 속이 보이는 계산이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연구개발(R&D) 분야 재정 투입 증가율이 복지 분야(10.4%)보다 더 높은 10.5%로 미래 성장 동력 확충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년 R&D 투자액은 9조8443억 원으로 9347억 원이 증가하지만 복지 분야는 61조8415억 원으로 5조8153억 원이나 늘어나 비교가 안 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도 예산 당국은 상당히 당당했고 기개가 있었다는 말을 경제기자 생활을 오래 한 선배들에게서 듣곤 했다. 어쩌다 예산처가 ‘꼼수’로까지 비칠 수 있는 속 보이는 셈법으로 물의를 빚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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