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재소장 카드’ 버릴까 버틸까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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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농성 한나라당 의원들이 1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의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채 ‘헌법 파괴 원천무효’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김경제 기자
단상 농성 한나라당 의원들이 1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의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채 ‘헌법 파괴 원천무효’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김경제 기자
“사진 찍지 마세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된 1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의 소장실 앞에서 한 직원이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취재는 공보실을 통해서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사진 찍지 마세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된 1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의 소장실 앞에서 한 직원이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취재는 공보실을 통해서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19일 또다시 무산됨에 따라 전 후보자의 거취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국회에서도 여야 대치와 막후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겠지만 청와대와 전 후보자 또한 진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형국이다.》

■ 임명안 3번째 무산… 盧대통령의 선택은

한나라당이 전 후보자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상황인데다, 헌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사람을 헌법을 해석하는 최고기관인 헌재 소장에 막무가내로 임명한다는 것은 정부로서도 정치적 법률적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전 후보자의 진퇴 여부는 최종적으로는 노무현 대통령과 전 후보자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 물론 노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고 전 후보자 또한 자신을 둘러싼 정국 파행을 모른 척 버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8일, 14일에 이어 세 번째로 무산됨으로써 전 후보자는 1차적 ‘피해자’가 됐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교착상황을 풀어야 할 1차적 책임자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동안 청와대는 전 후보자의 임명동의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며 두 차례나 유감을 표명했다. 열린우리당도 최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헌재 재판관 임명을 위한 청문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는 등 당초 입장에서 후퇴했다.

임명동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과든 절차변경이든 액션을 취하지 않은 사람은 전 후보자뿐 이다. 이제 전 후보자가 행동을 보여야 할 차례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된 셈이다.

전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30년의 법조 경력을 가진 전 후보자로서는 ‘자리’ 못지않게 ‘명예’도 소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상당수 법조인들의 목소리가 그에게 칼날처럼 느껴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문제를 정국의 뇌관으로 놔둔 채 마냥 시간을 끌기도 어렵거니와 헌재 소장 공백 사태의 장기화는 어쨌거나 정부 여당으로선 부담이다. 전 후보자 지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점도 고려 요인이다.

하지만 사실상 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더라도 겉으로는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라는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상처 입은 전 후보자를 포기하는 대신 한나라당의 ‘정국 발목잡기’를 최대한 부각시켜 정기국회를 비롯한 향후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의견도 여권 일각에는 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도 사석에서는 “한나라당의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 외에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한나라, 野 3당 중재안 거부 ▼

여야는 19일 하루 종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지만 끝내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날 오후 야4당 원내대표 회담 도중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전 후보자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헌재 재판관 임명 절차로서의 청문회를 열자’는 비교섭단체 야3당의 중재안을 들고 나와 한나라당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는 등 한때 해결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 철회라는 당론을 고수할 것을 주장하며 중재안을 거부해 임명 동의안 처리는 결국 물거품이 됐다. 중재안 수용 여부를 놓고 한나라당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회의 도중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거부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야3당은 오늘 임명 동의안 표결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여야 간 타협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가장 쉬운 해법은 한나라당이 입장을 바꿔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헌재 재판관 중에서 헌재 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 규정과 법률 절차를 위반한 전 후보자는 헌재 소장 자격이 없다’는 강경론이 우세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

한나라당이 불참하는 가운데 10월 10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열린우리당과 비교섭단체 야3당이 협력해 임명 동의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어지간하면 임명 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여야 합의 처리’에 무게를 두고 있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도 사태가 길어지면 ‘할 만큼 했다’며 여당 손을 들어줄 수 있다.

일단 이들 비교섭단체 야3당은 여야 합의 처리 원칙을 내세우며 한나라당의 법사위 청문회 참여를 계속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141명)과 민노당(9명)이 힘을 합치면 본회의 의결 정족수인 148명(재적 297명의 과반)을 넘기기는 하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다른 비교섭단체 의원들이 동참해야 안심하고 처리할 수 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49년 전에도 ‘全후보 사태’ 닮은 꼴▼

957년 11월부터 1958년 6월 사이 정치권이 제2대 대법원장 임명 절차를 놓고 지금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자격 시비와 비슷한 법리 공방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관과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는 70세가 돼 1957년 12월 14일 정년퇴임하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후임 대법원장으로 그해 7월 65세로 정년퇴임한 김동현 전 대법관을 제청하기로 11월 23일 의결했다. 이어 이틀 뒤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법원조직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법원조직법 15조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

즉 대법원장이 되려면 먼저 신분이 대법관이라야 하는데 김 전 대법관은 이미 정년퇴임해 더는 대법관이 아니므로 대법원장에 임명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반면 법 위반이 아니라는 쪽은 헌법에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이 있고, 법원조직법 39조는 대법원장인 대법관의 정년은 70세이고 기타 법관의 정년은 65세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관 임명과 동시에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면 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그해 11월 26일 현직 대법관이 아니어도 대법관 임명과 대법원장의 보직을 동시에 발령할 수 있고 대법원장인 대법관은 65세 이상이라도 임명될 수 있다며 제청에 법률적 결함이 없다고 결의했다.

결국 논란 끝에 12월 23일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된다’는 내용으로 법원조직법이 개정됐다. 퇴임한 대법관도 대법원장이 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동안 2대 대법원장을 임명하지 않다가 이듬해 1월 16일 임명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에도 법관회의는 이 대통령이 제청을 요청한 내정자에 대해 거부로 맞섰고, 법원조직법 개정 논란을 겪으면서 대법원장 자리는 한동안 공석으로 남았다. 당시 논란은 1958년 6월 16일 조용순 전 대법관의 대법원장 임명 제청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끝났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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