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이 합의해도 北 불응하면 무용지물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생각에 잠긴 라이스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옆으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왼쪽부터)이 서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생각에 잠긴 라이스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이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옆으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왼쪽부터)이 서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 포괄적 접근방안 가능한가

한미 정상이 북한을 상대로 추진하기로 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common and comprehensive approach)’의 핵심은 북한을 ‘당근’으로 유인해 6자회담에 끌어내는 것이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가장 큰 당근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완화한다는 것. 하지만 금융제재 완화 조치가 이뤄진다고 해도 ‘선(先) 금융제재 해제 후(後)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해 온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이 선선히 금융제재 완화에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머나먼 목표=정부는 ‘북핵 포기→대북 경수로 제공’ ‘북핵 폐기 조치 시작→대북 에너지 제공’ 등 9·19공동성명의 이행 절차를 북한의 계좌가 동결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미국의 제재 문제와 엮어 단계적으로 풀어 나가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 중이다. 금융제재에 집중된 북-미 간 긴장의 강도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금융제재는 북핵 문제와 무관한 (위조달러 제조 유통에 맞선) 법적 절차’라는 원칙을 고수해 온 미국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BDA 은행의 북한 계좌 중 합법적인 것으로 판명된 계좌의 제재만 푸는 등 조건부 제재 완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이 방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BDA 은행에 묶인 2400만 달러 중 ‘일부’만 돌려주는 조치, 즉 금융제재 ‘완화’는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 온 금융제재 전면 해제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9월 말까지 미국 일본과 합의한 뒤 중국 러시아와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 포괄적 접근 방안을 북한에 제시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북-미 양자 접촉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정부는 최근 중국을 통해 북한에 이 방안의 개요를 설명했는데 북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징후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포괄적 접근방안 논의와는 별개로 추가 경제제재 등 대북 압박 조치를 계속한다는 방침이고, 북한도 미사일 추가 발사 등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상존해 포괄적 접근방안의 미래는 험난하다.

▽포괄적 접근방안 추진 경위=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최근 미국 중국 일본을 번갈아 방문해 이 방안의 세부 내용을 조율했다.

중국은 지난달 말 송 실장이 중국을 방문해 구체안을 설명하자 “이런 것까지 추진하려고 하느냐. 그건 안 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직전 미국 워싱턴에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송 실장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및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2+2 회동’을 해 이 방안을 논의하게 된 것은 미국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라이스 장관이 이 방안을 추진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게 정부의 판단.

당초 이 방안의 영문은 ‘커먼 앤드 브로드 어프로치(common and broad approach)’였으나 논의 과정에서 ‘커먼 앤드 컴프리헨시브(comprehensive) 어프로치’로 바뀌었다. ‘브로드(광범위한)’보다 ‘컴프리헨시브(포괄적인)’가 부담을 덜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9·19 공동성명 “北 핵포기땐 지원” 작년 6자회담서 합의▼

지난해 7월부터 1단계(7월 26일∼8월 7일) 2단계(9월 13∼19일)에 걸쳐 20일간 열렸던 북한 핵 관련 제4차 6자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

북한에 대해 모든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6자회담 당사국들이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해석을 둘러싸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 경수로를 지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나, 북한은 경수로를 제공해야 핵 폐기가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가침 의사를 표명하는 한편 궁극적인 관계정상화도 보장했다. 이 밖에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대북 에너지 지원도 약속했다.

▼美, 합법자금 풀까▼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혹시 미국이 대북 금융 제재 문제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위기관리기구(ICG)는 지난달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 중 합법적인 금액에 대한 제재 해제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이 보고서 내용은 ICG 관계자가 워싱턴 미 국무부 고위 관리에게 직접 브리핑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ICG 보고서는 나이절 코위 평양 대동신용은행장 e메일 인터뷰(7월 28일)를 인용했다. 코위 은행장은 “마카오의 BDA은행에 묶여 있는 대동신용은행 자금(600만 달러)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의 금융전송 내용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미 행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BDA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돈은 2400만 달러. 그러나 코위 은행장의 주장은 이 중 600만 달러가 대동신용은행을 거쳐 나간 북한의 교역 자금이라는 것.

코위 은행장이 국제 금융전송 내용을 제공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600만 달러가 ‘합법적 자금’이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 행정부는 불법으로 조성된 북한의 마카오 자금 중 어디까지가 ‘합법’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동신용은행은 북한의 유일한 서방 은행으로 노르웨이 금융회사 페러그린이 북한 대성은행과 지분 비율 7 대 3으로 1995년 설립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북한, 손 내밀까▼

북한 핵 관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한 한미 정상의 합의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북한으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포괄적(comprehensive)이라는 의미 그대로 북이 원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 미국이 원하는 것 등이 모두 섞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도 일단 ‘우방’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한미 양국이 마련 중인 방안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 실행 여부. 방중은 7월 미사일 발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문 채택 이후 서먹서먹해진 양국 관계를 추스르고 6자회담 재개 노력 과정에서 중국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카드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 대북 금융제재 완화 등의 유화조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회담에서 한미 정상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문(1695호)의 이행약속을 재확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 유보를 두고 “사실상의 대북 제재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북한 노동신문은 15일 “남한 당국이 외세의 대북 적대정책에 추종해 남북관계 발전의 기초를 파괴하고 있다”며 “외세의 추동하에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소동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