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재현]상대국 관점만 좇는 외교관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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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제와 관련해 외교통상부를 취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외교관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아쉬움이다. 한일 불교복지회에서 일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100년간 묶여 있던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추진하는 문제를 취재할 때였다. 외교부 담당 부서에 이를 적극 지원해 줄 생각이 없느냐를 타진했다. 돌아온 답은 “어차피 북한 유물이고 통일되면 돌려받게 될 것을 왜 민간에서 자꾸 나서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외교부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고구려를 넘어 한국 고대사의 절반이 중국으로 넘어가는데 “지방정부 차원에서 벌이는 일이니 중국의 공식 입장과는 상관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학계의 한 인사가 외교부 고위 관료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관이냐”고 힐난하자 그 관료는 “상대국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 외교를 잘하는 것”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외교부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의 시마네(島根) 현이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한 것도 결국 지방정부 차원의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왜 외교부 장관이 방일 일정까지 취소하며 항의를 했던 것일까. 더군다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이처럼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인가. 노무현 정부에서 그처럼 강조하는 주체성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얼마 전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서방 기자들 앞에서 동서양 문사철(文史哲)의 고전을 줄줄 읊으며 박학다식을 자랑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아, 우리 관료들이 저런 지도자를 둔 국가와 역사 논쟁을 제대로 벌이고 있는 것일까.’

외교관들의 주체적 역사 인식 부재가 외무고시에서 역사 과목이 빠진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학계에선 한국이 군사력보다는 외교력을 더 키워야 한다며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에 빗댄 외교 전문 인력 ‘1만 양성론’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주변국이 영토와 역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역사관과 외교철학으로 무장한 외교 인재 양성을 계속 미룬다면 제2의 임진왜란과 제2의 병자호란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권재현 문화부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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