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北미사일, 美가기엔 초라” 美와 회담 앞두고 ‘외교결례’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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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만찬 건배유럽을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7일 오후 핀란드 대통령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헬싱키=석동률 기자
국빈만찬 건배
유럽을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7일 오후 핀란드 대통령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헬싱키=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7일 핀란드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실제 무력적 위협’이 아닌 ‘정치적 행동’이라고 평가한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대포동 미사일이 미국에 가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이라며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은 14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8일 성명을 내고 “북한의 대변인이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과 같다. 국내외적으로 북한의 입장만 전달하는 대통령이 과연 이 나라 대통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에 대한 무력적 위협 아니다?=노 대통령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가 미국에 대한 ‘실제 무력적 위협’이 아니라며 “무력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시험발사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 미사일은 애초부터 미국을 겨냥해 제작됐다. 미국이 7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문 채택을 주도한 것도 ‘실제적 위협’ 때문이라기보다는 ‘잠재적 위협’ 때문이었다. 미국은 1일 북한이 미국 본토로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를 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사일방어(MD) 체제 실험을 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지적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이정훈 교수는 “14일 정상회담에 임박해 상대방과의 시각차를 직설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을 향해 쏘기에는 너무 크다?=노 대통령은 “(대포동) 미사일은 한국을 향해 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는 한국을 무력적으로 위협할 의도를 보인 것이 아니라는 게 노 대통령의 시각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사일의 보유 및 발사능력 자체가 심각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사거리만으로 위협을 판단하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7월 5일 발사된 미사일에는 한반도 전역을 사거리로 하는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 6발이 포함됐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남주홍 교수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대포동2호를 시험발사했다는 것은 이미 북한이 미사일의 대형화, 장거리화, 정밀화에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한반도를 사거리로 하는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 초정밀 타격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핵 실험, 아무런 징후도 없다?=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실험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무런 단서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한미 양국 정부는 핵실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밀한 정보협력하에 북한 핵 및 미사일 관련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아무런 징후가 없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과거사가 동북아 통합을 저해?=노 대통령은 또 “동아시아에서 북한문제 외에 최대 의제는 무엇인가”라는 핀란드 기자의 질문에 “유럽연합(EU) 같은 역내통합을 모색하는 데 강력한 장애요인이 과거 역사문제”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강경대응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미지근한 대응의 온도차,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과거사 용서 촉구 등 일관되지 않은 과거사 대응도 과거사 문제를 꼬이게 해왔다는 지적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해외만 나가면…

2004년에도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북핵은 외부위협 억제용 일리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외순방 때마다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는 외교안보 현안 관련 발언을 하곤 했다.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발언은 2004년 11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했던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달 20일로 예정된 칠레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온 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무력행사나 봉쇄정책은 적절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며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미 정상은 당시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정책 최우선과제로 삼고, 평화적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했지만, 미국 국무부는 노 대통령의 ‘선수 치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5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할 것”이라고 밝혀 ‘많은 양보’의 내용과 ‘제도적 물질적 지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두고 국내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종 내부적인 불만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터키를 방문해서 “한국 국민 중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고 말해 대통령이 편 가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마다 또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다”며 “외교안보 현안 관련 발언은 국내에서 할 때보다 외국에 나가서 할 때가 훨씬 파장이 크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언론 덕” 할로넨 핀란드대통령 “감시 활발해 부패 예방”

“언론 탓” 盧대통령은 “北미사일 문제 더 어렵게 만들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제 무력적 위협으로 보는 언론이 더 많은 것이 문제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노무현 대통령)

“핀란드에 부패가 없는 것은 언론의 활발한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핀란드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상반된 언론관을 밝혔다. 취재기자들이 처음부터 양국 정상의 언론관을 물은 것은 아니었으나 답변 도중 자연스럽게 두 정상의 상반된 언론관이 부각됐다.

먼저 한국 기자는 할로넨 대통령에게 “핀란드가 세계 1위의 부패 없는 정부로 평가받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할로넨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가 늘 편안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며 언론의 비판 역할을 중시했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언론의 비판이 편안하지는 않지만 핀란드가 강소국(强小國)으로 발돋움한 배경에 깔린 언론의 순기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실제 핀란드에서는 언론, 특히 신문이 국가 어젠다를 설정하고 국정을 감시하는 순기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13세 이상 인구의 45% 이상이 매일 신문을 읽는 등 신문 열독률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

특히 한 조사(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 따르면 15세 핀란드 청소년의 59%가 매주 몇 차례씩 신문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청소년은 2%에 불과해 연령에 관계없이 신문의 여론 주도 기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평소 언론에 많은 불만을 터뜨려 온 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또 다른 도발 행위가 있을 위험성이 있느냐”는 핀란드 기자의 질문을 받자 또다시 화살을 언론에 돌렸다.

“북한 미사일은 무력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정치적 행동으로 보지 않고 실제 무력적 위협으로 보는 언론이 더 많은 것이 문제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노 대통령이 국내에서 쏟아내던 언론에 대한 불만을 외국 정상 앞에서, 그것도 공동 기자회견장에서까지 토로한 것이 과연 국격(國格)에 맞는 언행이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헬싱키=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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