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大亂]밀리면 정권에 타격 VS 학교 門을 닫더라도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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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혼란 언제까지…제주지역의 5개 사립고가 신입생 배정 거부를 한 가운데 6일 오전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영훈고교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 등이 ‘사학재단 규탄 기자회견’을 열려고 하자 학교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현장 혼란 언제까지…
제주지역의 5개 사립고가 신입생 배정 거부를 한 가운데 6일 오전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영훈고교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 등이 ‘사학재단 규탄 기자회견’을 열려고 하자 학교 관계자들이 이를 저지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6일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려는 일부 사립학교에 대해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은 ‘초동 진압’의 때를 놓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청와대는 우선 개정 사립학교법에 대한 사학들의 반발 강도가 심상치 않다는 데 주목했다. 지난해 법안 공포 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종교계 지도자들까지 만나 설득했지만 새해 들어서도 사학의 반발 움직임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부 사학들의 조직적 연대 움직임도 감지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을 계속하기로 한 상황과 맞물려 이번 일부 지역의 신입생 배정 거부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절박감이 청와대에 깔려 있다.

이 경우 사학법을 강행처리하면서 내세운 대의명분이 허사가 되는 것은 물론 국정 기강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가 “이미 공포된 개정 사학법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헌법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헌법질서 수호’를 내세운 것에서 청와대의 위기감을 읽을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선 사학법에 대한 국민의 지지 여론이 높다는 점도 청와대가 강경하게 돌아선 배경으로 보인다. 신입생 배정 거부로 학사일정 차질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원군(援軍)’이 됐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이 갖춰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며 사학비리 전면 조사 방침을 거론한 것도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4년차라는 시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사학의 요구에 밀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후반 권력누수) 현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청와대의 강경 대응에 호응했다. 오영식(吳泳食)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학생들을 볼모로 일부 사학재단들이 자신들의 입장이나 기득권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당 중진들의 의견을 종합해 내놓은 공식 논평에서 “정부 여당이 날치기까지 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학법을 통과시켜 놓고서 이제 법질서 운운하며 국민을 협박하는 태도에 대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며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했다. 대신 박 대표는 직접적인 반응을 자제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전국의 사립학교 법인과 학교 관계자들은 정부의 강경 방침에도 불구하고 신입생 배정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전북도회는 6일 전주 코아리베라호텔서 ‘전북 평준화지역 사립학교 이사장 교장 연석회의’를 열고 12일로 예정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날 모임에는 전주 군산 익산 등 전북 도내 평준화 지역 사립고교 이사장과 학교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지역의 사립고는 24개다.

이들은 “정부 여당이 사학법을 재개정하거나 무효화하기 전에는 수업권 침해라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신입생 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협의회 부산시회(회장 오정석 동래학원 이사장)도 이날 사립중고교 이사장 및 교장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회를 갖고 신입생 배정을 거부한다는 협의회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인천시회 이병희 회장(세일고교 설립자 겸 교장)도 “정부가 사립학교법을 다시 개정하지 않는 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 이사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신입생 배정까지 한 달 정도 남은 만큼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법인 이사장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회는 9일 긴급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권희태(權熙泰·72·경상고 교장) 회장은 “신입생 배정 거부에 대구지역 43개 사학 법인 이사장이 모두 동의했다”며 “이는 개정 사학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학교를 폐쇄하기 위한 전 단계”라고 강조했다.

경남도회 이이두 회장은 “지역 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 결정은 전국적 합의에 따른 것이어서 경남지역만 이런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해 배정 거부에 무게를 실었다.

경남도교육청은 “20일 신입생을 배정할 계획인데 마산과 창원, 진주, 김해 등 4개 평준화 지역의 17개 사립고 중 아직까지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해 온 곳은 없다”고 밝혔다.

울산시회(회장 강종식·상북학원 이사장)의 이창욱 행정실장은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전에 정부의 타협안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충북지역 사학 법인은 다음 주 중 이사장 23명이 모임을 갖고 신입생 배정을 거부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충북도회는 지난해 12월 “법률 불복종 운동 전개, 신입생 배정 거부, 학교 폐지라는 중앙협의회의 기본 방침을 지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결의했기 때문에 신입생 배정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교육부 대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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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내 5개 사립고교의 신입생 배정 거부 사태에 대해 청와대가 사학비리 전면 조사 등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혀 사태가 조기 수습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한국사학법인연합회를 중심으로 개정 사립학교법 철폐 투쟁을 벌이면서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정부가 비리 사학을 칠 경우 투쟁 대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문제 사학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감사 인원 보강 등 대책에 착수했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종교계, 특히 천주교계 학교의 반발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제주도교육청은 6일 제주시내 5개 사립고 교장들을 상대로 신입생 배정 거부 결정을 철회하고 9일 예비소집 절차를 진행하도록 설득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사학의 실정상 학교장은 결정 권한이 없고 학교법인 이사장이 결정해야 하는데 외유 등으로 자리를 비운 학교도 있다.

교육부는 “6일 오후 6시까지 예비소집 진행 여부에 대해 답변하지 않을 경우 신입생 배정 거부행위로 간주해 9일부터 시정명령 등 법적인 조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사립고들이 예비소집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교사 학부모 등으로 전담팀을 구성해 예비소집 업무를 대행하도록 준비 중이다.

교육부는 9일 학교장과 설립 경영자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7일 이내에 불응하면 학교장과 설립 경영자를 고발하기로 했다. 또 임원취임승인 취소 계고, 임시이사 파견 절차를 거쳐 신입생 배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 일정을 정상화하는 데만 적어도 25일은 걸린다는 점이 부담이다. 제주지역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서울(2월 10일) 등 배정일이 늦은 시도의 경우 배정 거부 사태가 발생하면 1학기 학사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립고가 학생 등록을 거부할 경우 2, 3일간은 수업 차질이 예상됨에 따라 교육부는 개교일을 연기하거나 방학기간을 단축할 방침이다.

최악의 경우 사립고들이 신입생 입학식과 수업을 시행하지 않으면 이들 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을 국공립학교에 수용키로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학급당 학생 수 및 학급 수를 늘리고 교사 수급을 조정하거나 통학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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