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섹터 기업]"경영실적은 묻지마" 民도 官도 모럴해저드

  • 입력 2005년 12월 6일 03시 01분


코멘트
《경기 광명시는 2000년 음악도시의 인프라를 갖춘다며 민간 기업과 함께 음반 유통회사인 케이알씨넷(자본금 56억 원)을 설립했다. 당시 전국에는 음반회사가 이미 23개나 있어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회사 설립 직후 MP3플레이어를 비롯한 인터넷 음악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케이알씨넷의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졌다. 결국 이 회사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83억 원, 94억 원의 적자를 내 자본금을 모두 까먹었다. 광명시는 더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지분 매각을 결정했지만 부채가 자산보다 80억 원이나 많고 비(非)상장 회사여서 출자금(6억 원)을 되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케이알씨넷은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제3섹터 기업이 경영 부실 끝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전형적 사례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단체장의 최대 과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이었다. 제3섹터 기업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상당수 기업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자본금을 모두 까먹은 곳도 적지 않다.

○ 잘못 끼운 첫 단추

제3섹터 기업의 설립 기준은 ‘공공성 때문에 민간 기업이 참여하기 어려운 분야’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많은 지자체가 이미 민간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거나 공공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설립 요건부터 맞지 않는 ‘잘못된 출발’이었다.

경기 부천시의 부천카툰네트워크는 1999년 애니메이션 제작업체가 30여 개나 있는 상황에서 설립됐다. 인터넷 만화에 대한 투자에 나섰지만 수익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결국 청산됐다.

제주도는 2002년 삼성SDS 등 민간 기업과 함께 정보기술(IT)산업 진흥을 목표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JS소프텍을 설립했다.

하지만 ‘영세업체들에 피해를 준다’는 지역 내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제주도는 최근 출자 지분 공개 매각을 결정했지만 입찰가격이 액면가의 절반도 안 돼 4억여 원의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산시가 침체된 신발산업의 활로를 찾는다며 설립한 테즈락스포츠도 자본금을 모두 날린 채 작년 말 문을 닫았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출자금은 지역 기업들의 판매 경로 확보와 마케팅 지원비용으로 사용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 방만 경영으로 빚더미

지방정부와 민간 자본이 섞여 있는 애매한 지배구조는 경영 실적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이에 따라 공금 횡령을 비롯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자주 눈에 띈다.

충남도가 출자한 중부농축산물류센터는 최고경영자(CEO)의 방만한 경영과 횡령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충남도는 센터 내 놀고 있는 땅을 팔아 급한 불은 껐지만 사업성이 불투명해 전문 물류회사에 경영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케이알씨넷의 대표이사는 자신과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놓고 이사회의 승인 없이 부동산 경매에 참가해 입찰보증금을 몰수당했고 공금을 개인적으로 빌려줬다가 떼인 사실이 드러나 물러났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한다는 주식회사의 기본 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 낙하산 인사 난무

공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낙하산’ 인사가 제3섹터 기업에도 횡행하고 있다.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대구복합화물터미널은 4명의 대표이사가 모두 대구시 퇴직 공무원 출신이다. 1997년 설립된 부산관광개발도 초대 대표이사만 제외하고 2, 3, 4대 대표이사가 모두 부산시 퇴직 공무원 출신이다.

부산시는 “골프장 개장 이후 2003년부터 경영 상태가 호전되고 있어 감사원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역대 제3섹터 법인 대표이사 98명 가운데 회사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공무원 출신이 24명(24%)이나 됐다.

단국대 행정학과 박용성(朴龍星) 교수는 “제3섹터 기업은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쉬운 운영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지자체는 제3섹터 기업이 부실해져도 단체장의 책임 문제를 우려해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고 기업도 지자체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일본의 실패 교훈에서 배워야

일본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전국 종합개발계획’과 ‘경제·사회 기본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제3섹터 기업이 급격히 늘어났다.

세금 감면 등 정책적 지원을 받아 자치단체의 지분이 50% 이하인 제3섹터 기업은 1990년대 후반 약 3000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정부와 민간 기업, 두 부분의 장점이 아닌 결점만이 결합돼 부실화된 제3섹터 기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공무원들의 퇴직 이후 자리를 마련하거나 자치단체가 민간 자금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 성공 사례도 있다

대부분의 제3섹터 기업은 적자 누적, 자본 잠식, 청산이라는 악순환에 시달리지만 흑자 행진을 이어 나가는 성공 기업도 있다.

이들은 민간에서 풍부한 경력을 거친 경영진의 지휘 아래 주민과 밀착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남무역은 위기 상황에서 판로 개척으로 승부수를 띄워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

1996년 농수산물 수출 촉진을 위해 설립된 전남무역은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누적 적자 8억5000만 원으로 자본금이 잠식되는 상황에 처했다.

2000년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일본 정부가 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매년 140만 달러 이상의 돼지고기를 일본에 수출해 왔기 때문.

이 회사는 중계무역으로 살 길을 모색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해 이를 다시 일본에 수출했다.

전남무역 관계자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해외 거래처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노력했다”며 “그 결과 중계무역을 하면서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0년 첫 당기순이익(4800만 원)을 내더니 2003년에는 누적결손액을 모두 메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720억 원.

이런 변신에는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수익을 내야 산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김성환(金聖煥·55) 사장 등 경영진의 공이 컸다. 김 사장은 ㈜쌍용에서 23년간 무역 실무를 담당했던 베테랑.

1970년 닭, 돼지 사료의 제조,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축도 매년 안정된 수익을 올리는 우량 기업.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당기순이익이 20억 원을 넘었다.

이 회사의 강점은 지역 주민과 밀착된 영업력. 각 지역에 포진한 영업사무소 직원들이 농가를 직접 방문해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농가의 축산물 판매를 무료로 주선하는 등 고객과의 유대 강화에도 열심이다.

영업부 직원은 20명 남짓이지만 90% 이상이 대학 축산학과 출신으로 전문성이 높다. 크고 작은 50여 개의 경쟁회사를 제치고 이 지역에서 3대 사료 판매업체에 올랐다.

회사 측은 “경북도의 지분만 있을 뿐이지 민간 기업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344억 원의 흑자를 낸 ㈜대덕테크노밸리 임직원도 모두 민간 기업 출신이다.

지분의 65%를 가진 한화가 경영 전반을 맡고 있다. 대전시(20%)는 인허가 등 행정 지원, 산업은행(15%)은 자금 지원을 각각 맡는 등 3자간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하지만 감사원은 전남무역과 경축에 대해서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민간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며 출자 지분 회수 등 (해당)지자체의 재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