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DJ와 임동원-신건씨 ‘불구속 조율’ 파문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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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13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을 찾아가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의 불구속 수사를 사전 조율했다는 본보 보도(28일자 A1·3면 참조)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권의 검찰 장악 시도가 드러났다’고 강력 비판했고 이 총리와 청와대, 동교동 측은 언급을 자제하면서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야, 대비되는 반응=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28일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국무총리가 조율에 나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정권이 검찰 독립을 훼손한 것이 분명한 이상 이번 도청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정권 차원의 기획 수사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이규택(李揆澤) 최고위원은 “이 총리가 DJ를 찾아가서 불구속 문제를 조율한 것은 일종의 협박 비슷하다”며 “이는 노무현(盧武鉉) 정권이 검찰을 장악해 수사권을 통제하려는 행태를 보여 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와대 김만수(金晩洙) 대변인은 “그 부분(보도 내용)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며 “다만 이 총리와 DJ 측 사이에 사전 조율이 있었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중동 5개국을 순방 중인 이 총리는 보도 내용을 보고 받았으나 “됐다”고만 말한 뒤 사실 여부에 대해 입을 닫았다. 그러나 국내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총리실 관계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얘기는 없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느냐”며 간접 시인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DJ 측도 언급을 피했다.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할 말이 없다. 그런 말을 했다는 사람에게 물어보라”고만 말했다. 최 비서관은 당초 30분 정도로 알려졌던 이 총리와 DJ의 면담 시간에 대해 “1시간 정도였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불구속 사전 조율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두 전직 원장의 구속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할 만큼 했음을 보여 주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이번 보도로) 청와대가 DJ 측에 대해 최선의 성의를 보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아니냐”며 “호남 여론 등을 고려하면 여권에는 손해 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 林-辛씨 구속 막전막후

▽전직 국정원장 구속 당시 긴박했던 여권 움직임=검찰의 DJ 정부 시절 도청 수사가 두 전직 국정원장으로 향하자 여권 내부에선 DJ 측과 정치적 조율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절박감이 팽배했다. 호남 지역에 대한 DJ의 영향력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은 처음엔 두 전직 원장에 대한 불구속 방침을 세웠으나 수사팀의 브리핑을 받고 구속 불가피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검찰 측 전언이다. 천 장관은 11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나 구속 수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비슷한 시점에 검찰 수뇌부도 움직였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검찰 수뇌부에 두 전직 원장에 대한 불구속 선처를 요청한 것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검찰 고위 관계자가 11일 신 전 원장을 만나 ‘도청 정보를 보고 받았다는 정도만 시인하면 불구속하겠다’고 제의했다”고 전했다.

신 전 원장의 변호인도 “그런 제의를 받은 사실이 있다. 그러나 신 전 원장이 ‘도청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걸 내가 인정하면 국민의 정부가 도청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신 전 원장은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내가 정치공작을 했느냐, 아니면 누굴 협박이라도 했느냐. 내가 원장으로 재임 중에 도청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얻은 정보의 사용처를 대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이 총리의 DJ 면담은 이 같은 사전 정지작업 후에 이뤄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의 DJ 면담은 두 전직 원장에 대한 DJ의 교통정리를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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