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임명제청 이후]사법부 主流가 바뀐다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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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화의 발판인가, 혼란의 시작인가.

사법시험 횟수와 법원의 전통적인 서열을 뛰어넘은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두고 법관들 사이에 기대와 한숨이 엇갈리고 있다.

많은 법조인이 이번 대법관 임명 제청을 계기로 법원의 전통적인 ‘주류(主流)’가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사법부의 인맥(人脈) 지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판사도 많다.

▽“주류가 바뀐다”=“재야와 비(非)서울대 출신이 성골이고 재조의 서울대 출신은 육두품도 안 된다.”

이 대법원장이 3명의 대법관을 임명 제청한 19일 한 고위 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비서울대 출신과 재야 추천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9명 가운데 재야 추천의 박시환(朴時煥) 변호사는 추천 당시부터 ‘무혈 입성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김지형(金知衡)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50%의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대법원장이 비서울대 출신을 포함시키겠다고 한 상태에서 9명 중 비서울대 출신은 김 부장판사를 포함해 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출신 학교를 떠나서도 박 변호사와 김 부장판사는 모두 법조계의 ‘비주류’에 속한다. 박 변호사는 ‘개혁 판사’ 모임의 리더였다. 김 부장도 민법 등 ‘주류법학’이 아닌 노동법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웠다.

이에 따라 법원의 전통적인 주류를 형성해 온 ‘서울대 중심의 엘리트 법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대법관 임명 제청에서 ‘다양성’과 ‘소수’가 중요한 기준이 됨에 따라 ‘주류’와 ‘다수’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소수의 비주류’가 각광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원의 인맥도 다양하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는 참여정부의 ‘파워그룹’으로 떠오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우리법연구회’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와 김 부장판사는 이들 모임 소속이거나 이들 모임의 지지를 받았다.

▽대법원도 변화 불가피=대법관 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 19일 임명 제청된 대법관 후보 3명을 포함해 이들 14명의 성향을 보면 대부분 보수 또는 중도보수로 분류된다. 진보적 색채를 갖고 있는 대법관(후보 포함)은 김영란(金英蘭) 대법관과 박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대법관 5명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에는 변화가 더 크게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퇴임하는 대법관 5명은 모두 중도보수 또는 보수 성향인데 이들의 후임 중 2명 이상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중도진보 또는 진보 쪽의 대법관이 4명 이상이 돼 대법관들 사이에 이견과 논쟁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성계의 몫이 더 늘어나고 학계 쪽에 대법관 문호가 개방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헌재는 내년 9월 윤영철(尹永哲) 소장을 포함해 헌법재판관 5명이 임기만료 등으로 교체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결정이 국정 운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치권이 ‘헌재의 재구성’을 위해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도 천천히 가자”=대부분의 판사는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갑작스러운 충격은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중견 법관은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시류에 영합하거나 지나치게 튀려는 판사들이 나올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사법부는 어차피 사회와 체제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법원이 진보에 치우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靑 “검찰 자극할라” 후임 총장 인선 신중론▼

김종빈(金鍾彬) 전 검찰총장 후임 인선을 놓고 청와대 내부에선 신중론이 우세하다.

이번 주에 후임 인선을 매듭짓자는 한때의 강경 기류가 수그러들고 본격적인 인선 작업이 다음 주로 넘어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후임 인선을 앞두고 가급적 검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와대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후임 인선을 위한 물밑 작업은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대통령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 일부에선 후임자 인선과 관련해 다소의 진통을 무릅쓰더라도 아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같은 사법시험 기수인 17기로 내려야 한다는 강경론도 없지 않으나 이럴 경우 윗 기수 선배들의 대거 퇴진이 검찰 조직을 뒤흔들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일선 검사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후임 검찰총장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장 인선 결과에 따라 잠복된 불만이 분출할 가능성도 크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대검찰청의 한 검사는 “여권이 파문을 우려해 검찰 조직을 크게 흔드는 인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뜻하지 않은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중견 검사는 “단지 정권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검찰 조직의 특성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가 기용될 경우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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