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위 국정원 국감]盧정부, DJ때 도청 해명 ‘딴소리’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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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 실태’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설명이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이어서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김승규(金昇圭) 국가정보원장은 7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DJ 정부 당시 도청 실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청이 이뤄졌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날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검찰에서 ‘DJ 정부 시절의 조직적 도청’을 시인한 것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전직 직원에 대해 수사권이 없어 김 전 차장을 조사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열린우리당 임종인(林鍾仁) 의원이 전했다.

하지만 김 원장의 이런 설명은 8월 25일 정보위에서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김 원장은 당시 “DJ 정부 시절에도 불법 감청이 이뤄졌던 흔적이 일부 드러났지만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차별성도 분명히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원장은 이날 국감에서 ‘DJ 정부의 도청이 조직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한나라당 공성진(孔星鎭) 의원의 질의에 대해 “김은성 전 차장에 대한 조사 없이 (8월 발표) 당시 수사내용만 갖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도 8월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일부 국정원 조직의 도청과 정권의 도청은 구분해야 한다. (DJ 정부에선) 정권이 책임질 만한 과오는 없다”고 김 원장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과 김 원장이 당시 어떤 근거에서 DJ 정부의 도청을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성격을 규정하고 나섰던 것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는 이날 운영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8월 18일 발언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려 한 수사 방해이자 지역감정에 영합하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하며 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과 김 원장이 DJ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별 생각 없이’ 공개했다가 여권 내부와 호남을 중심으로 역풍이 거세지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충분한 사실 관계 파악도 없이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8월 5일 김 원장이 기자회견에서 DJ 정부 때의 도청 사실을 발표한 직후 DJ는 ‘국민의 정부에서 도청은 없었다’고 강력 반발했으며 곧이어 병원에 입원하자 여권 내의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던 것이 사실.

청와대 측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었음을 사실상 시인하는 분위기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7일 “대통령의 8월 발언은 사실 관계를 파악한 보고에 의한 것은 아니다”며 “DJ 정부 때 도청을 했다 해도 이전 정권의 잔재 차원 정도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이지, 전반적 조사 보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원장은 이날 국감에서 휴대전화 도청이 DJ의 사전 승인 하에 이뤄진 것 아니냐는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의 질의에 “당시 불법 감청은 대통령 승인과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감청 승인서에는 R-2나 카스(CAS) 등 어떤 (감청) 장비를 이용하겠다는 것이 들어가지 않고 감청 대상 번호 자체도 기재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어떤 기계로 무엇을 감청하는지를 대통령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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