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 대통령, 잘못된 정보에 갇혀있지 않나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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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의 ‘정보 괴리’ 현상이 심각하다.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아서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 공유가 망설여진다”는 말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부 안에서조차 외교 실무자들이 느끼는 한미관계의 변화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상층부가 언급하는 양국관계의 긴밀도 간에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무성할 정도다.

왜 이렇게 됐는가. 외교 안보의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과 국내 정치적 계산에 맞는 방향으로 관련 정보를 편식(偏食)해 온 게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본다.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는 많은 국내외 관계자들과 언론이 현 정권 출범 이후 “한미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경고했지만 대통령부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듭 부인해 왔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의 ‘위기 과장’으로 몰아붙이기를 반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미관계의 현실이 제대로 보고(報告)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이 외교통상부의 대미(對美) 실무자들을 ‘친미파’로 모는 상황에서 누군들 대통령에게 ‘빠르게 이완되는 한미관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보고 채널 자체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소수 측근들이 틀어쥐고 있어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한미 간 정보 공유체제와 정부 내부의 보고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있어야 한다. 정보가 정확해야 바른 정책이 나온다. 북한 핵처럼 한미공조가 긴요한 외교 안보사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다른 정보와 인식 위에서는 원만한 공조를 기대할 수 없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코드에 맞지 않는 정보라도 그것이 한미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기탄없이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보고 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 수많은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이 있는데, 생각이 같은 몇 사람에게만 국가 안위와 관련된 정보를 의존해서야 되겠는가. 대통령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이 정보의 정직한 흐름을 막는 가장 큰 장애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부터라도 진실로 공유된 정보와 인식의 토대 위에서 현안들을 논의해 줬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안보상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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