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현인택]韓中日 3국, 공존의 해법 찾아야

  • 입력 2005년 4월 2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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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대만 독립 문제를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로 생각했던 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잠재적 갈등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럽이 이미 극복한 문제들이 동북아에서는 이제야 껄끄러운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 중국, 한국 사이에서 영토와 역사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이 갈등은 이미 사라졌어야 할 유물이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강력한 돌풍이 되어 이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 이것을 적절하게 극복하지 못하는 한 21세기 동북아는 다시 19세기처럼 국가 간의 벌거벗은 세력 다툼의 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고질적 원인이 있다. 첫째, 지정학적 경쟁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오랫동안 벌여 온 세력 경쟁이 양국 정책결정자들의 뇌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평화스러운 부상(浮上)’을 믿지 않고, 중국은 일본의 ‘정상(正常)국가화’를 군국주의의 재현으로 의심한다.

둘째, 미진한 역사 정리이다. 일본의 역사문제에 대한 완고한 태도는 언제고 국가 간 갈등의 촉매제가 된다. ‘용사마’로 대변되는 일본 내의 엄청난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한번이면,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한일관계는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같은 문제나 아직 잠재하고 있는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방침도 언제고 한중 간에 불씨가 될 수 있다.

▼영토-역사문제로 갈등 증폭▼

셋째, 영토문제에 관한 한 국가 간 양보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본은 역사 왜곡으로 한국과 중국의 분노를 사면서 동시에 독도 및 센카쿠열도를 놓고 집요하게 영토 분쟁화하려고 한다. 이런 얽히고설킨 갈등이 국가라는 이름 아래서는 언제나 정당화된다.

넷째, 주요 국제문제에서도 국가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유골 사건으로 북한 핵문제에 대해 강경책으로 선회한 일본의 태도는 북핵 문제를 유화적으로 풀어 보려는 한국정부에는 불만이다. 미일 간의 확대된 안보협력문제는 대만문제와 연계됨으로써 중국의 심기를 이만저만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다섯째, 약한 지역제도도 이 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을 더디게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그나마 유일하게 전 지역을 포괄하는 매우 느슨한 안보협력체다. 이것은 아직은 국가 간 갈등을 조정하는 기제로 작동할 만큼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여섯째, 편협한 민족주의의 대두이다. 강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향은 보통 신생국의 새로운 ‘국가건설’ 과정에서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 동북아 3국 모두에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경제신흥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재진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이런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족주의는 적당하면 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정치 지도자들은 때로 이것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해결이 쉬운 것은 없다. 그러나 한중일 세 나라는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고, 3국을 오가는 방문객이 무려 연 1000만 명을 넘나드는 인적 교류의 시대다. 윈윈(win-win)을 위해 국제평화라는 큰 비전을 그려야 한다.

▼정치지도자 신념-용기 중요▼

결국 열쇠는 정치지도자들이 쥐고 있다.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중국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에 덜 의존하고 국제적 규범에 더 다가서며 자국을 다원주의 사회로 만들어 가겠다는 결단을, 일본 지도자는 역사 문제를 풀기 위한 대담한 결심 같은 것을 할 수 없을까. 이를 기대하는 것은 정녕 사치스러운 꿈인가. 그것을 요구하기 위해 한국은 가혹할 정도로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 지도자만이라도 타국보다 만개(滿開)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위에서 행동함으로써 ‘아시아의 잉글랜드’를 만들어 갈 수 없을까. ‘품격 있는 국가’가 되는 것만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인택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ithy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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