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진표]진보단체들 ‘北인권’은 안보이나

  • 입력 2005년 2월 14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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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가혹한 범죄행위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단기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에 침묵하고 오히려 군부와 협조하고 있다.”

진보계열의 한국 시민단체들이 얼마 전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먼 나라’ 미얀마의 인권문제까지 제기하는 이들이 유독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침묵하고, 나아가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측을 비판하는 사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마침 사노맹 조직을 주도해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백태웅 씨가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도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운동권의 핵심이던 백 씨의 발언은 내부자의 조언으로서 외부의 질타에 비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처럼 한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어논리가 있다. 우선 북한 인권 상황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인용하면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자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극단까지 가게 된다.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와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등의 문제를 제기한 유엔 인권위의 보고서는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미얀마 인권까지 챙기면서…▼

둘째, 북한 인권문제의 제기는 남북관계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 거론에 신중할 수 있다 하더라도 민간이 이런 정치적 고려를 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변명이다. 이는 북한정권이 한국정부에 대해 민간의 북한 인권 개선운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시비를 걸면 이를 용인하자는 이상한 발상을 전제로 삼는다.

셋째,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인권 상황은 좋아지게 돼 있다고 말한다. 1970, 80년대 한국에서 급진적 민주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이는 이 느긋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천성산 도롱뇽과 새만금 백합조개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수령 1인의 노예가 된 2000만 동포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북한 인권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보수 세력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데에 부담을 느껴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련의 붕괴로 좌우 패러다임이 구시대의 유물이 된 뒤 서로 상대방의 합리적 의제를 수용하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워졌다. 체면이나 아집 때문에 폐쇄성에 빠지는 집단이야말로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여전히 북한은 좋은 체제라고 믿는 극단적인 친북파들은 소수이며 지금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세력의 다수는 대북 환상에서는 벗어나 있다. 문제는 김정일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교조에 있다. 이 교조로 인해 김정일 체제에 해가 되는 일은 삼간다는 일종의 자기통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약자의 편에 선다는 진보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으며, 김정일 체제를 개선의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햇볕정책과도 모순된다.

▼내부통제에 스스로 발목 잡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인권이 이념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편 가르기가 벌어지면 내부통제가 발생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진보 계열 내에서 누군가 북한 인권을 거론하고 싶어도 배신행위가 아닐까 하는 묘한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기류가 발견된다.

김정일의 초상화를 걸레로 닦았다고 체포되고, 김일성 신년사를 못 외운다고 맞아죽은 정치범수용소의 노인 이야기. 1995년 주사파로 활동하던 필자가 탈북자의 수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과거 한배를 탔던 이들에게 ‘진실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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