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시제품 생산]美협조-판로확보가 순항 필수조건

  • 입력 2004년 12월 15일 18시 01분


코멘트
남북한이 개성공단 개발 합의서에 서명한 지 4년 4개월 만인 15일 개성공단이 첫 시제품을 생산했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력, 북측의 저렴한 노동력과 토지 등 유리한 조건을 갖췄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하다.

▽판로 확보=현재로선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판매 지역은 국내 시장과 옛 공산권 국가 정도. 한-싱가포르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판로를 넓히기는 했지만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으로의 판로 확보는 요원하다.

일부에서는 ‘메이드 인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갖는 부정적인 인식을 깨뜨리려면 개성공단에서 반제품 형태로 생산한 다음 국내로 들여와 완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로 들여와 완제품을 만들려면 원가가 상승해 개성공단의 장점을 상쇄하게 된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南成旭) 교수는 “통일 전 서독은 유럽공동체(EC)에서 동서독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관세나 수입할당 등 무역장벽 없이 다른 회원국에 동독상품을 수출했다”며 “한국도 독일의 선례를 국제사회에 호소해 ‘민족내부거래’ 사실을 공인받는다면 판로 개척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경제협력 새 전기
15일 북한 개성공단에서 열린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기념식’에서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왼쪽에서 여섯 번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에서 일곱 번째),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여덟 번째) 등 참석 인사들이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개성공단=사진 공동취재단

▽미국의 협조 확보=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거나 해결의 가닥을 잡기 전에는 개성공단의 성공을 ‘축복’하지 않으려는 미국을 설득해 ‘협조 내지 방관’을 확보하는 것이 숙제다.

개성공단이 남북간 민족공조의 대표적인 모델이고, 순수하게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할 경제협력사업이지만 미국은 사실상 적성국가인 북한에 자금이 직접 유입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미국은 개성공단으로의 전략물자 반출을 통제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전략물자 반출에 대한 심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시범단지 입주 예상업체 중 2개 업체는 협력사업승인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수출을 규제하는 전략물자를 대체할 물질이나 부품을 북한에서 찾아내면 미국의 수출규제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의원은 15일 개성공단 현지에서 열린 경협토론회에서 “정부가 진정 개성공단의 성공을 바란다면 북한이 확보할 수 있는 대체물질의 현황을 조사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라인의 北여성근로자
개성공단에 입주한 주방기기업체 리빙아트 생산 라인의 북한 근로자들이 15일 제품을 손질하고 있다. -개성공단=사진 공동취재단

▽북한의 의지=한국은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 사실상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성공을 바라면서도 어정쩡하게 끌려오는 듯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동용승(董龍昇)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북한은 외화벌이나 경제상황 개선 등을 위해 공단의 성공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러나 개성공단 때문에 체제유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체제안정을 위한 내부단속 의지가 개성공단의 성공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15일 시제품 생산 기념식에서 북측의 주동찬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은 “반세기 동안 갈라져 있던 남북이 처음으로 힘을 합치는 가슴 뜨거운 현실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측에서는 이날 기념식에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까지 참석하며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북한의 화답은 없었다.

북측의 대화의지 결여에 다소 실망한 듯 정 장관은 사전에 배포한 기념식 축사 원고를 행사 30분 전 급히 고쳐 “남북 당국간 대화가 6개월여 정체되고 있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