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박창달 체포안’ 찬반내용 자수 요구 파문

  • 입력 2004년 7월 7일 23시 59분


코멘트
열린우리당 평당원들이 한나라당 박창달(朴昌達)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달 29일 부결된 것을 계기로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투표 내용 공개운동이 일부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무기명 비밀투표 내용을 당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투표 내용 공개를 거부하는 의원이 잇따르고, 중앙위원들이 집단으로 설문조사 중단을 촉구하는 등 사건이 당내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열린우리당 당원들의 ‘찬반투표 자수 요구’는 지난 주말 당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시작됐다.

‘박무’라는 이름의 네티즌 당원이 당 게시판에 띄운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을 색출하자”는 제안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어 △찬, 반 어디에 기표했나 △반대 의원에 대한 조치 △열린우리당 의원으로서의 자세를 묻는 질문서가 돌면서 파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어 일부 의원들이 질의서에 대한 공식답변서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7일 현재 의원 투표 내용을 공개한 의원이 50명을 넘어섰다.

이와 함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은 의원들에 대한 공격과 비방이 인터넷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역풍과 비판=전병헌(田炳憲) 의원이 처음으로 “부결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떠나 모두가 참담함과 책임감을 같이 져야 하고 사후적으로 반대한 의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답변서 제출을 거부하면서 사태의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 게시판에 일부 당원들이 ‘마녀사냥식 색출’은 곤란하다는 반대 의견을 개진한 데 이어 일부 의원들도 이에 가세했다.

정봉주(鄭鳳株) 의원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했다고 모두 비개혁적인가”라며 “당원들의 움직임은 의미가 있으나 색출해 출당시키자는 식의 접근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미경(李美卿) 의원은 “투표 내용 공개는 적절치 않다”며 자신의 보좌관을 통해 답변 내용을 스스로 철회한다는 글을 당 게시판에 올렸고, 우윤근(禹潤根) 의원도 “보좌진이 올린 것”이라며 답변을 철회했다. 이광철(李光喆) 의원은 “의원 개개인의 양심과 판단을 강박하고 줄을 세우는 것 같은 답답함과 모욕감을 느꼈다”며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 문제가 당의 분란으로 치닫자 중앙위원 22명은 당 게시판에 “그동안 진행해 왔던 가부 투표 내용 설문조사를 중단해 주시기를 일부 중앙위원 연명으로 권고드린다”는 글을 띄웠다.

▽파장과 전망=인사(人事)에 관한 사안은 국회법상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투표에 앞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 개개인의 소신에 맡긴 자유투표를 실시했기 때문에 의원들에게 질의서를 통해 투표 내용을 공개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또 네티즌 당원들의 압력에 굴복해 비밀투표 내용을 공개한 의원들은 ‘개혁적’이며, 응하지 않은 의원들은 ‘수구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체포동의안 부결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개별 의원들에게 기한을 정해 놓고 찬반 투표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자체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여론보다 소신이 중요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