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금창리 해법’

  • 입력 2004년 7월 2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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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17일 ‘뉴욕 타임스’ 1면에 깜짝 놀랄 기사가 실렸다. “북한이 영변 인근에 대규모 지하 핵시설을 극비리에 건설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1994년 북-미(北-美) 제네바 합의로 동결됐던 핵개발 프로그램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공사 현장의 위성사진을 확보했다”는 미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그 후 몇 달 동안 두 나라간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이른바 ‘금창리 의혹’이었다.

▷미국은 금창리에 대한 사찰을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은 거세게 반발했다. 북한은 문제의 지하시설이 핵개발과는 무관하다며 미국이 기어이 현장조사를 하겠다면 ‘모욕’에 대한 대가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3억달러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했다. 한바탕 치열한 신경전 끝에 두 나라는 이듬해 3월 합의에 이르렀다. 금창리 사찰과 식량 60만t 지원을 교환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금창리를 방문한 미국사찰단은 텅 빈 동굴을 목격했다.

▷전문가들은 금창리 소동을 북한 협상술의 성공 사례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개로 잘게 쪼개 협상 때마다 하나씩 내보이는 ‘살라미(salami) 전략’이 북한 협상술의 기본이라면, 금창리 사건은 과거에 없었던 카드를 새로 만들어 내면서까지 대가를 챙긴 사례다. 미국으로선 사찰을 통해 북한의 핵시설 건설을 중단시켰다고 자위했겠지만, 어쨌든 동굴 하나 구경한 것치고는 대가가 컸다.

▷엊그제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금창리 해법’을 다시 언급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고농축우라늄(HEU)과 관련해 “미국이 근거를 제시하면 금창리 사건 때처럼 보여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문제는 ‘금창리 해법’으로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느냐는 점인데, 답은 단연코 ‘노(No)’다. 플루토늄 핵개발과 달리 우라늄 핵개발 장비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든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한번 속았던 미국이 또 넘어갈 리도 만무하다. 그러면 진짜 해법은? 북한도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의 선례를 따르는 것, 결국 그것이 최선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북한이 언제쯤 깨닫게 될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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