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코노기 마사오/金正日위원장이 오산하면…

  • 입력 2004년 6월 20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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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을 둘러싼 정세는 1년 전만큼 비관적이지는 않다. 지난해 4월 미국이 바그다드를 제압하고 5월 주요 전투의 종결이 선언됐을 때만 해도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간은 한정돼 있었다. 얄궂게도 9월 이후 이라크 점령의 혼란이 우리에게 교섭의 시간을 부여해 준 것이다.

게다가 올 2월 말 제2차 6자회담에서는 미국 대북 외교의 ‘부분적인 후퇴’가 표면화됐다. 이라크 점령의 갖가지 혼란에 더해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 터라 조지 W 부시 정권은 강경 노선의 실행을 주저했던 것이다. 또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전선을 만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이라크 혼란에 美강경노선 주춤▼

이에 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최근의 남북대화 진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두 번째 평양 방문 등이 북한의 외교적 입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북한은 이제 강경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을 고립시키고 새로운 핵 합의를 달성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6자회담의 최대 초점은 보다 중요해질 제4차 회담의 성공 조건이 정비되느냐의 여부에 있다.

흥미롭게도, 이번 고이즈미 총리와의 수뇌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핵동결은 비핵화로의 첫걸음이고 당연히 검증을 동반한다”고 지적했을 뿐 아니라 “6자회담에서 미국과 이중창을 부르고 싶다. 목이 쉴 정도로 미국과 노래할 것이다. 주변국에 오케스트라 반주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 자신의 말처럼 이번 회담의 초점은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보다 핵개발 전면 동결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사전에 CVID를 서약시키기보다는 북한이 주장하는 전면 동결의 실질적인 내용, 즉 그 범위나 검증, 관리 등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CVID의 구체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령 핵동결은 영변에서 진행 중인 플루토늄 추출 작업에 한정되는가. 이미 추출된 플루토늄에도 적용되는가. 핵 폭발장치가 존재한다면 그것에도 적용되는가. 또 북한이 우라늄 농축계획의 존재를 계속 부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평화적 이용이라고는 해도 우라늄 농축계획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가. 게다가 어떤 수단으로 그것들을 검증하고 감시할 것인가 등이다.

북한측은 변함없이 일괄타결과 동시행동의 원칙을 고집할 것이나, 부시 정권이 이에 응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빌 클린턴 정권 시대의 ‘틀 짜기 합의’나 ‘로드맵’으로의 복귀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중개 노력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은 극히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위 쟁점에 대해 북한의 실질적인 양보가 이뤄지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한정적인 에너지 지원의 재개, 테러국가 지정 해제에 관한 협의 개시 등 ‘대응조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남북 경제협력이나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도 촉진될 것이다.

따라서 정세 호전을 계기로 북한이 구체적으로 행동하면 제4차 회담을 위한 조건이 정비될 수 있다. 반면 북한이 정세 호전을 과신해 ‘다수파 공작’으로 치달으면 부시 정권은 북한과의 교섭에서 열의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제4차 회담 일정이 결정되지 못할 수도 있다.

▼北상황 과신땐 다시 위기 불러▼

김 위원장은 핵 확산 저지에 관한 부시 대통령의 결의를 의심해서도 안 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일 양국을 궁지에 몰아넣어서도 안 된다. 이라크의 혼란도 미 해공군의 행동을 더 이상 구속하지 못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거나 혹은 존 케리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이란의 핵개발 문제는 미국 정부의 핵 확산 저지 결의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오산이다. 1년 뒤에 정세가 다시 비관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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