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태환/韓中‘동반자 관계’의 함정

  • 입력 2004년 6월 4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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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대만 총통 취임식에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이 참석한 것에 대해 중국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의원들에게 사전에 대만 방문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고 전화를 한 데다 다녀온 의원들에 대해 ‘이를 기억할 것’이라는 식으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이야기인 듯싶다.

▼대만방문 의원에 감정적 표현▼

이에 대한 한국측 반응은 다양하다. 내정간섭이 아니냐고 흥분하는 의견도 있고 국익에 도움이 안 되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하며 정부간 문제가 아니므로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도 한다. 우리에게 중국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인지, 또 왜 중국은 한국에 그토록 ‘큰 기대’를 하는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가 인식하는 ‘중국’이 실체로서의 중국이라기보다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이미지로서의 중국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선 중국의 대전략 구상부터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앞으로 20년을 한 세기의 중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전략적 기회’로 보고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중국이 취한 전략적 선택은 대미관계 안정화를 토대로 한 ‘평화적 부상’이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책임 있는 대국의 이미지를 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그 일환이다. 또 이 전략의 성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관건이 될 수도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대만 통일이라고 인식하는 중국은 대만 독립 저지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중국의 외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다. 중남미 국가 중 대만과 단교하려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중국 외교공세의 결과로 볼 수 있는 좋은 예다.

북한 핵문제 및 6자회담도 이러한 전략적 틀 속에서 다뤄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의 통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으로서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것이 대만 문제다. 우리가 북한 핵 등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중국에 협력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에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한중관계를 ‘전면적 협력동반자’라고 할 때 중국이 말하는 동반자는 서로의 의견이 다른 것은 보류하고 일치하는 점만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른 점이 있다고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아니다. 상호 입장의 차이를 잘못 인식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동반자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한중관계의 비대칭성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과 달리 중국의 대전략에서 한반도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가 중국에 비중을 두고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의 대중 자세와 입지는 약화된다. 우리는 할 말을 못하고 냉가슴 앓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에 의존할수록 입지 약화▼

이에 대비해 우리는 중국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해 주어야 하지만 중국의 진정한 친구로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숙지하도록 평소에 부단히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에 대해 막연한 친밀감 표시로 지나친 기대만 불러일으킨다면 장차 어려운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우를 자초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실망도 클 것이므로 그 역효과가 우려되는 것이다.

또 더욱 중요한 것은 한중관계가 이러한 관계로 나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입지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치밀한 전략 개발과 더불어 정부와 국회, 여야간에 표현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중국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일이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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