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홍순영/통일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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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통일을 원하는가. 왜 통일을 원하는가. 어떻게 통일을 성취해야 하는가. 한 미국인은 한국인이 통일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통일을 원치 않고 있고, 통일의 기회도 찾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인은 통일에서 오는 부담이 싫어서 통일을 원치 않고 있고, 통일에의 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더구나 통일 너머의 한국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의 경우 많은 독일인은 통일을 100년의 과제라고 생각했고, 또 통일에서 오는 부담이 싫어서 통일을 원치 않았던 독일인도 있었다.

▼평화주의-시장경제 원칙으로▼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원하고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통일이 이뤄진다면 그 통일은 공산주의 독재체제로의 통일이든가 시장경제 민주체제로의 통일 중 하나다. 즉 흡수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흡수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 그리고 흡수당하지도 않을 군사적 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을 햇볕정책의 기조로 하고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당면 과제는 통일이 아닌 평화공존이다.

왜 통일을 원하는가. 북한은 공산주의 주체사상을 남한에 전파하고자 하며, 남한은 우리가 가진 자유와 번영을 북한 주민에게 전파해 함께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민족주의 주체사상을 지향하고 있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개인의 기본권을 지향한다. 이것은 가치관의 충돌이다. 우리는 자유가 역사의 흐름이라고 믿고 있다.

어떻게 통일을 성취해야 하는가.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는 먼저 남북간에 시장경제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경제공동체를 세우는 데 합의해야 한다. 이것은 북한경제의 개혁 개방을 전제로 한다. 북한은 핵무기가 아니라 경제발전에서 나라의 안전보장과 정통성을 찾아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로 한 경제협력은 남한뿐 아니라 전체 국제공동체가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주체가 아니라 상호의존과 상호협력을 통해 외국 기업인들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얼마나 큰 지도력을 요하는 일인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소프트랜딩 통일에의 길이다.

가족상봉, 체육·문화 교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인도주의 원조 등은 모두 경제공동체로 나가는 준비단계가 돼야 하고, 그런 점에서 통일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가족상봉이나 체육교류가 통일의 완성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행사가 가능한 대로 시장경제의 원칙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

통일한국은 어떤 성격의 나라가 될 것인가,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질서 위에 서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은 비핵국가로서 재래식 무기만으로 무장되고 일본 자위대의 규모만 한 군대를 가진 중간국가, 평화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주요한 일원이 되어 동아시아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전 국토에 자유가 전파돼 7000만 국민이 큰 생동감을 갖고 선진민주 공업국가 건설에 진력할 것이다. 남북간 의식의 간격과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북한의 노후한 인프라를 재건하는 일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민족주의적 감상만으론 안돼▼

지금 우리의 과제는 이 같은 통일한국의 위상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가치관과 시장경제 원칙을 더욱 강화해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공고히 하는 데 있다. 그 기초 위에 통일한국이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통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통일은 민족 내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래서 통일은 민족주의적 감상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홍순영 객원논설위원 전 외교통상부·통일부 장관 syhongsen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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