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병주/정부가 시장인가?

  • 입력 2004년 5월 20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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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은 늘 변화 속에 있다. 인간이 만든 제도 또한 어제 오늘이 다르다. 그래서 항시 기구나 조직을 고치고 다시 짜는 일(개편)도 있어야 하고, 제도를 새롭게 고쳐 나가는 작업(개혁)도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변화를 외면하고 이겨낼 독불장군은 아무도 없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결국 변화를 수용하는 속도 완급에 있다. 진보가 단숨에 혁명 또는 그에 준하는 변화의 홍수를 소망한다면 보수는 숨 가쁘지 않을 만큼 변화의 물꼬 조절을 바란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개혁 논의는 원론 수준에 머물고 있다. ‘나는 진보, 너는 보수’의 패가름이 성행하고, ‘무엇을, 어떻게’를 차분하게 따지는 냉정을 잃고 있다.

▼개혁 ‘무엇을 어떻게’ 따져봐야▼

개혁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것 가운데 지켜야 할 핵심가치가 무엇인가부터 확인하는 일에서 출발하고, 그 핵심가치의 뿌리를 더욱 다지고 키울 수 있는,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일로 마감하는 데 있다. 한국의 핵심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이것마저 갈아 치워야 ‘진보’로 친다면 그것은 이질체제 숭배론이다. ‘보수’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결국 개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몇 가지 상품의 가격결정이 경제 논리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개통된 지 얼마 안 되는 고속철도(KTX) 요금을 생각해보자. 서울∼부산간 요금이 일반실 4만5000원, 특실 6만9000원이다. KTX 건설에 약 18조원이 투입됐다는데 그 요금으로 투자비 회수는 고사하고 보수유지비, 경상운용비나 충당되는지 궁금하다. 같은 노선의 항공료 등을 고려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한 정치적 가격이다.

가격결정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회가 챙기는 상품이 쌀이다. 농민 표를 의식한 국회의 가격결정이 장기적으로는 크게 농민을 울리게 될 것이다. 농산물시장 개방 이후 쌀시장을 지킨답시고 이미 일본도 채택한 관세화를 피하고 ‘최소시장접근’ 방식을 고집해 수요도 없는 수입쌀 사재기만 하고 있다. 결국 유예기간이 끝날 때 닥칠 충격을 키우고 있다. 물론 인기 영합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국민을 위한답시고 직장-지역을 통합해 조직이 비대해진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개편 이후 일반 국민의 부담금은 확실히 올랐다. 불분명한 것은 수입금 중 공적보험기구의 직원 보수 등 운영비가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왜 그들의 파업이 잦은지 등이다. 그것을 알아야 보험료 결정도 납득된다. 총선 전 논란이 된 KBS 시청료 징수 문제도 상당수 소비자의 욕구를 외면한 강제성 때문이었다.

엊그제 건교부 자문기구가 건의한 아파트 분양원가 비공개 방침이 석연치 않다. 건설업의 특성과 공급 의욕은 이해되지만, 수요자에 대한 정보 제공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국민정서의 떼쓰기 위협 때문인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시민연대’라는 조직은 무슨 돈으로 운영되나? 수입지출 명세를 밝히는 연대들이 드물다. ‘연대’인지 소대인지도 불명하다. 기업투명성 못지않게 이들 조직의 운영도 밝혀져야 한다. 정부는 왜 이들을 지원하나? 이들의 민폐 때문에 오른 생산비를 가격인상을 통해 소비자에 전가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가격결정이 추상적 시장이 아니라 구체적 인간들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것이 노동시장이다. 그렇다고 임금결정이 투쟁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나? 공기업, 대기업 노조의 회계자료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제3자의 감사를 받고 있는가? 기업의 노조부담금 역시 가격인상 요인이다. 엊그제 발표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민간기업 ‘가이드라인’으로 밀지 말라. 정부가 시장인가?

▼시장경쟁 원칙 소홀해선 안돼▼

스크린 쿼터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양식당, 중식당도 1년 중 일정한 날짜 수만큼 한식을 팔아야 한다는 방식이 스크린쿼터제다. 한국 영화가 요즘은 잘 나가 유치산업단계를 벗어났는데도 소득 높은 소수 연예인들 등쌀에 통상협상을 망치고 다수 국민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 정권창출의 논공행상 때문인지 정부가 휘둘리고 있다.

구체적 사안에서 대중인기 영합, 집단이기주의를 격파하고 시장경쟁 원칙에 충실함을 보여야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제대로 가는 개혁이 된다. 그것이 한국의 핵심가치에 충실한 개혁이고 성장잠재력을 키운다.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pjkim@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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