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석유자원 개발 요청]남북 유전개발 산넘어 산

  • 입력 2004년 5월 19일 0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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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서한만의 석유자원 개발을 한국에 요청한 것은 북한의 극심한 에너지난과 변화된 남북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전략적 자원인 석유 부문을 개방하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북한 내 유전 개발은 경제적 요인 외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되기까지는 ‘걸림돌’도 적지 않다.

특히 북한의 석유 개발을 위한 ‘남북한 직거래’에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남북 공동 자원개발 신호탄=북한 원유공업성이 서한만 유전개발을 한국에 요청한 이유는 기존에 탐사를 맡았던 노르웨이 업체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데다 다른 서방 기업들은 참여를 꺼리고 있기 때문.

북한은 1997년 서한만에서 450배럴의 석유를 최초로 생산한 뒤 그해 10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이곳에 50억∼40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석유 전문가들은 매장량 50억배럴 이상이면 ‘초대형(자이언트급) 유전’으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고(故)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도 98년 북한을 방문한 이후 “북한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북한 지도자들은 ‘만약 석유가 발견되면 현대가 한국의 정제시설까지 육로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탐사를 맡은 노르웨이 업체가 자금 부족으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은 데다 북한 정부도 이를 지원할 만한 여건이 안돼 개발이 지연돼 왔다. 여기에 다른 서방 기업들을 유치하려는 시도도 북한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련 제도 미비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 당국자는 “지난달 북한 원유공업성 싱가포르 사무소가 한국석유공사에 개발 참여를 타진하는 제안을 한 뒤 이후 팩스 등을 통해 사업 개요를 설명했다”며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당분간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민간 차원의 접촉만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만약 남북한이 서한만 개발에 합의할 경우 한국은 유전에 대한 지분참여를 통해 원유 자급률을 높이고 북한의 경제난 완화로 남북간 긴장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15, 1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서해 대륙붕 개발을 위한 남북한과 중국의 극비 모임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접촉 역시 ‘석유를 통한 한반도의 긴장 완화’라는 카드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 관계 등 걸림돌 많아=이번 북한의 제안으로 자원 분야에서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실제로 한국의 참여가 이뤄질지는 다소 불투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 석유 전문가는 “군부가 실질적인 조정권을 갖고 있는 북한 원유공업성의 제안을 한국이 받아들인다면 미국의 보수파가 불쾌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다자간 틀이 아닌 남북간 직접 교섭에는 거부감을 보인다는 것.

한국국방연구원 김재두(金載斗)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명분 자체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인 만큼 핵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지고 나서 북한 유전 탐사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석유공사를 통한 민간 차원의 접촉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는 추측이 많다.

김 연구위원은 또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해도 개발 방법과 분배 방식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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