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형 교수 “탄핵정국, 국민 法의식 잠깨워”

  • 입력 2004년 4월 28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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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의 헌정적(憲政的) 의미를 미국 대통령들의 탄핵사례에 비추어 성찰한 책이 나왔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미국사)가 펴낸 ‘탄핵, 감시권력인가 정치적 무기인가’(책세상 간)는 미국 헌정사에서 탄핵소추 대상이 됐던 3명의 대통령, 즉 앤드류 존슨(재임 1865∼1869), 리처드 닉슨(1969∼1974), 빌 클린턴(1993∼2001)의 사례를 거울삼아 한국의 탄핵상황을 객관적으로 반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미주리대 방문교수로 미국에 체류 중인 조 교수는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탄핵정국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보는 측과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빼든다는 뜻)으로 보는 측이 맞서 정쟁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사를 돌이켜볼 때 탄핵제도가 다수당의 횡포로 악용된 소지도 분명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에서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의회 다수당이었던 공화당 보수파와의 타협을 통해 탄핵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러운 타협’이었기 때문에 이후 의회의 견제력은 약화됐고 부패로 얼룩진 ‘도금(鍍金)의 정치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반대로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 측의 타협안을 거부하고 ‘깨끗한 사임’을 택했지요.”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탄핵정국도 의회다수당이었던 공화당측이 정략적으로 이용한 책임이 크지만 개인적 체면 때문에 사과 한 마디로 끝날 사적인 문제를 국가적인 일로 비화시킨 클린턴의 책임이 더 컸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해 국민들이 국가운영원리의 실체로서 헌법에 본격적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긍정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헌법 조문 속에서 눈만 부릅뜬 채 숨죽이고 있던 탄핵제도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야말로 국민이 헌정질서의 주체로 행동하게 됐음을 말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 교수는 국민이 묵묵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에는 반대한다. 그는 헌법이 국민주권의 궁극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촛불시위와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들이 능동적이고 활발한 의사소통에 나서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총선결과를 바탕으로 탄핵심판이 이미 끝났다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여론조사가 단기적 민의, 선거결과가 중기적 민의라면 헌법은 궁극적 민의의 반영물이지요. 이번 판결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된다면 헌법 개정을 통해 바꿔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는 “미국에서는 탄핵제도의 역사가 신(神)의 지위에 있던 대통령을 인간으로 끌어내렸다”며 “한국에서도 ‘아버지’ 같기만 하던 대통령을 ‘형제’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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