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장향숙 당선자 험난한 ‘국회투어’

  • 입력 2004년 4월 2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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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장향숙 당선자가 22일 김원기 고문(왼쪽)과 함께 국회 개원 준비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장 당선자는 이날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국회 시설물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경제기자
열린우리당 장향숙 당선자가 22일 김원기 고문(왼쪽)과 함께 국회 개원 준비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장 당선자는 이날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국회 시설물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경제기자
“의식이 열려야 공간도 열린다.”

22일 오전 11시경 국회 1층 146호 회의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인 장향숙(張香淑) 당선자가 김원기(金元基) 고문,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섰다. 장 당선자처럼 휠체어가 있어야만 이동할 수 있는 1급 중증 장애인이 의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사무처는 최근 50억원을 들여 장애인용 시설을 포함한 국회 개보수 공사를 진행해왔고 장 당선자는 이날 직접 국회를 찾아 준비상황을 둘러봤다.

회의장 안에는 휠체어를 타고 발언대까지 갈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안내를 맡은 국회 사무처 이길성(李吉成) 관리국장이 “‘뒷좌석 중 하나’를 지정해주시면 불편이 없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하자 장 당선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장 당선자는 “키가 작아서 뒤에 앉으면 앞이 안 보일 뿐 아니라 남들과 따로 앉는 것도 싫다”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회의실을 나서자 휠체어 이동 통로가 없는 계단이 나타났고, 동료 의원 6명이 휠체어를 번쩍 들어서 장 당선자를 이동시켰다. 지켜보던 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이마에는 진땀이 흘렀다.

장 당선자는 “뉴스를 통해서 국회 사무처가 ‘크게 고쳐야 할 점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고 ‘과연 그럴까’라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연 뒤 “국회가 한 명의 장애인 의원을 위해서 뒤쪽에 장애인용 좌석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또 “장애인 의원 한 명 때문에 건물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탈권위주의, 열린 공간을 만든다는 자세를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2층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 앞까지 갔지만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강용식(康容植) 국회 사무총장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일본 국회처럼 높낮이가 조절되는 발언석을 설치하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연설이 가능하도록 의장석과 발언석의 폭을 넓히겠다”고 약속했다.

장 당선자는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 옆의 휠체어 이동 통로를 통해 국회 본관을 빠져나가면서 “보시다시피 어느 건물이든 장애인의 동선이 훨씬 길게 돼 있다”며 “함께 산다는 가치를 공유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행한 국회 사무처 직원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허점이 곳곳에서 노출된 것에 대해서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장 당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장 당선자는 의원회관까지 둘러본 뒤 “이제 정말 의원이 된 것 같아 행복하다”며 “장애인을 포함한 이 나라 모든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1급 중증 장애인이 됐다. 부모님이 읽어준 성경으로 한글을 깨쳤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다 스물두 살 되던 해 처음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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