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유창근-성근 형제 35년만에 만나

  • 입력 2004년 3월 2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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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 양용식씨(가운데)가 29일 금강산 김정숙 휴양소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남측의 아버지 양태형씨(오른쪽)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 양용식씨(가운데)가 29일 금강산 김정숙 휴양소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남측의 아버지 양태형씨(오른쪽)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9일 금강산의 북측 숙소인 김정숙 휴게소에서 시작된 9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유창근(74)·종근씨(62) 형제는 독일에서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성근씨(71)를 35년 만에 만나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냥 다 죽은 줄만 알았어. 내 팔자가 왜 이런지 몰라."(창근씨)

"아버지 어머니 모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형."(성근씨)

성근씨는 독일 본 대사관에서 노동부 파견 노무관으로 일하던 1971년 베를린 부근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부인, 딸과 함께 납북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방침에 따라 성근씨 혼자 69년 독일로 부임했고, 부인과 딸은 성근씨의 귀국을 1개월 앞둔 71년 독일을 방문한 상황이었다.

"성근씨가 (동독지역인) 동 베를린행 열차를 탄 것 같다"는 목격자가 나오면서 한때 자진 입북설이 나왔지만, 뚜렷한 입북동기가 없어서 납북사건으로 종결됐다.

형 창근씨는 취재를 위해 모여든 남북의 기자에게 "고향(충남 연기군)에서 이름난 수재였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해 행정고시를 통과한 동생이 뭐가 아쉬워서 북한으로 갔겠느냐"고 되물었다.

남측에서 온 두 형제가 울음을 멈추지 못하자 성근씨 옆에 있던 한 여성이 "좋은 날 왜 우시냐"고 말했다. 한국 대사관을 떠날 당시 8살짜리 코흘리개 꼬마였던 성근씨의 딸 정희씨(41)였다. 이에 창근씨 가족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성근씨는 "형님, 좀 진정하세요. 나도 할말이 많지만, 차차 합시다"라며 형제들을 달랬다.

그는 입북 후 통일연구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12월 은퇴했다고 말했다. 함께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성근씨의 아내는 가정주부로 지내다 2002년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근씨는 "암에 걸려 죽을 뻔 했지만, 형님 보려고 이를 악물고 살았다"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말했다.

그러나 성근씨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문제를 위해 봉사하겠다. 대학생 시절에도 한민족의 예속현상 때문에 민족자주 사상에 많이 흥분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상봉에서는 87년1월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 12명 중 한 명인 양용식씨(47)가 남측의 아버지 양태형씨(78)를 만나 눈길을 끌었다. 두 차례로 나뉘어 진행되는 9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중 이날부터 시작된 첫 행사에선 남측가족 126명이 북측 가족을 만났다.

금강산=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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