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인택/'북한식 해결' 주시한다

  • 입력 2004년 2월 23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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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역할을 할 제2차 6자회담이 곧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북한의 핵포기 선언과 같은 극적인 국면 전환이 나올지 아니면 회담 지속을 담보하는 합의 정도의 소(小)타협에 만족하게 될지, 아직은 베일에 가려 있다.

▼세계흐름 이해한 카다피와 측근들 ▼

2003년 8월의 1차 6자회담 이후 북한 핵문제의 저변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의혹 차원에서만 거론돼 왔던 북한 농축우라늄 문제의 ‘파키스탄 커넥션’ 실체가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이란 등 국제 핵 암거래와도 연관된 것이어서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물론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나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이것은 특히 북한의 핵폐기 의사의 진실성 정도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즉 북한의 ‘미래의 핵 투명성’을 가늠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의 일방적인 핵폐기 선언도 중대한 환경 변화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에 고무돼 북한 핵문제도 리비아식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된 리비아식 해법이 어느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영국을 중재자로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 9개월여의 물밑 대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다피에게는 서방을 잘 이해하는 그의 아들과 심복들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성격의 인적 요소가 없다. 오히려 세계의 변화에 무지한 북한 군부가 북한의 전향적 방향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리비아에는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 영국과 같은 진실한 중재자가 있었다는 점이 북한과는 다른 상황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에 남한이 실질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 스스로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어느 위협 당사국이 한 해 수십만t의 식량과 비료를 수년 동안 제공하면서 소위 위협 대상국을 살리려고 원조를 해 대겠는가.

중국이 중재자로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리비아에 있어서의 영국의 역할에 결코 못지않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바라면서도 또한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인한 한반도의 불안정도 원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내심 걱정하는 바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이 두 가지의 이해가 충돌하게 됐을 경우 중국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하는 것에 있을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 핵문제에 관해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세계 강국들이 다 달라붙어서 이구동성으로 ‘손에 들고 있는 위험한 물건만 내려놓는다면’ 안전보장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호 이행 과정을 점검해 가는 단계적 접근방법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국적 보장방식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무엇이 미심쩍고 무엇을 더 바라겠다는 것인가.

▼6자회담 성패 北선택에 달려 ▼

리비아식 해결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에 대해 일방적 항복 선언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 수사(修辭)와는 달리 내용은 그야말로 ‘북한식 해결’이며 리비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내재되어 있는 ‘행복한’ 해결 방식이다. 그리고 꽤나 지난(至難)할 수도 있는, 6자회담과 같은 외교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6자회담이 이제 단순히 떼어 버리면 끝이 나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생명보조장치에 불과할지, 아니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생명체를 태어나게 할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할지의 선택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

모든 나라가 북한의 선택을 인내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선택은 반드시 올바른 쪽이어야 할 것이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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