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정목/'고시 할당제’ 역차별 어쩌나

  • 입력 2004년 2월 8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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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에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방대 육성책이 나오면 환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5급 행정 및 외무고시 지방인재 채용목표제’에 대해서는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목표제’의 핵심은 합격자 가운데 지방대 출신이 20%에 못 미칠 경우 부족한 수만큼 지방대 출신을 추가 합격시킨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정원 외 추가합격이기 때문에 서울 소재 대학 출신자들을 역차별하지 않으면서 지방대 출신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조건적 ‘지방 살리기’의 함정 ▼

그러나 성적 미달자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합격한다면, 같은 점수를 받은 서울 소재 대학 출신자들이 차별받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이라는 중요한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특히 지방대에도 서울 출신 학생들이 상당수 재학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혜택이 말 그대로 지방 출신의 지방대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며칠 전 지리산 자락의 어느 군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오전 강연시간에 맞추기 위해 전날 저녁 현지에 도착했는데,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문을 연 상점이 드물고 거리는 비어 있었다. 한적한 시골 거리 풍경이 평화롭게도 느껴졌지만, 지방의 공동화를 목격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방의 공동화란 이렇듯 돈과 사람이 떠나는 것이다.

지방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떠난 돈과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지방대를 육성해야 하는 이유와 목표도 여기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지방대생들에게 특혜를 주어 고시에 더 많이 합격시키면, 우수한 지방대 졸업생들이 더 많이 지방을 떠나 중앙으로 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목표제의 목표가 실종될 것이라는 얘기다.

모든 제도는 그 사회의 문화와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시 열풍에 휩싸여 있고, 그 폐단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지나치게 고시만을 좇아 낭비되는 인력과 자원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가 거꾸로 이를 부추겨서야 되겠는가.

이번 목표제는 국가 중견 공무원을 충원하는 제도이며, 국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정책이다. 치밀한 검토와 공개토론 등을 통해 조야의 여론을 수렴해 가면서 신중하게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방언론과의 합동회견에서 ‘혁명한다는 마음’으로 이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해 총선을 앞둔 선심정책이 아니냐는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은 정치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정치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다양하게 이해가 엇갈리는 국민을 아우르며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측은 현재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일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니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대통령은 더욱 초연해야 한다.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적 가치에 어긋나고 지방 육성이라는 큰 목표에도 배치되며 사회정서와도 맞지 않는 이 ‘목표제’를 투명한 참여 과정도 생략한 채 발표하는 것은 ‘소탐대실’로 가는 지름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회균등’ 민주적 가치 훼손 우려 ▼

이렇게 해서는 다수당이 되더라도 정당성을 잃을 것이며, 이렇게 하고도 소수당에 머문다면 더 할 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 지방과 지방대를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보다 강력하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하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이 목표를 이룩하기 어렵다. 방법도 새로워야 한다. 그래야 의석에 관계없이 온 국민이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이끌 수 있다. 이것이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정정목 청주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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