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국민 볼모 정치’ 안된다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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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2월 15일 재신임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하여 국정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야당과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이겠다고 하니 과연 국익을 위한 것인지, 개인의 신원(伸寃)을 위한 것인지 진의를 모르겠다. 국민이 불안해하면 재고할 수도 있겠는데 참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대의정치를 부정하고 직접 민주정치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재신임 정국 국회도 우왕좌왕▼

정당들의 대응도 각각이어서 불안은 가중되기만 한다. 일부에서는 신임국민투표의 위헌성을 내걸어 철회를 요구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비리를 철저히 파헤쳐 이에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으면 탄핵을 소추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민투표를 중지하도록 헌법소원을 제출한 사람도 있다. 각종 단체에서는 재신임 투표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국론은 분열되고 정국은 불안정하여 국민은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다.

외국에서도 이 사안을 중시하고 있다. 우방에서는 파병연기를 위한 작전이 아닌가하고 의심하며, 산적한 외교현안을 앞두고 대통령직이 불안정하여 국제적인 불신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외국의 평가기관들도 한국의 신용평가를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정기국회 말에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예산안 통과와 중요법률 제정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이런 혼란을 계속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생각하면 사퇴하면 되는 것이요, 막중한 책임을 내팽개친 채 4년4개월의 임기를 걸고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은 정치적 도박이지 정상적인 국정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현재의 여소야대 하에서는 통치하기가 힘들다면 다음 선거에서 ‘노무현당’이 국회의 다수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국민을 담보로 잡고 ‘올 오어 낫싱’의 도박을 벌이는 것은 안 된다.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맹세했던 것이다.

선서 후 8개월도 안된 마당에 국정의 혼란을 가져오고 헌법 위반의 가능성이 많은 재신임투표에 호소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하겠다. 대의기구의 견제를 싫어하고 지지자들의 박수만 받으며 정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재신임 투표에 관한 여론조사에 잘 나타나 있듯이 투표 부결 후의 정국혼란과 국가불안을 걱정하여 국민은 불신임을 안 할 것으로 믿고 투표를 강행하려고 하는 모양이나 여론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대통령이 대국적 국정개혁을 하려면 국회규정이나 선거규정을 고치는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헌법개정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이 순리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해야지 국민을 볼모로 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각 정당도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 대통령의 재임을 참을 수 없다면 대통령의 하야를 위한 방안을 정정당당히 강구해야 한다. 위헌 불법행위를 했다면 대통령에 대하여 탄핵 소추하는 것은 당연하며, 선거부정에 의하여 당선되었다면 선거소송에서 선거무효를 받아내면 될 것이다. 지금 대통령선거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하니 이 선거소송 수행에도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대통령제 보완 개헌논의 기대▼

선거무효나 불신임 후 사퇴하는 경우 몇 조원이 드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동시에 해야 하는 부담이 크며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국민투표 무효나 탄핵 소추를 하는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는 오랫동안 정국 불안이 계속될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이 기회에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하여 운영되는 대통령제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헌법개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헌법개정안에서 현 대통령의 임기를 헌법개정 국민투표 통과일에 끝나게 하면 될 것이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국민의 복지를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4년은 국정이 안정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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