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영/대통령 당적 확실한 선택을

  • 입력 2003년 9월 30일 18시 31분


코멘트
경제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환율 유가 등 국제적 요인까지 겹쳐 주름살이 깊어가고 있다. 이럴 때 정치라도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하는데 상황은 그 반대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가 오히려 경제안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 불확실성, 경제 불안정 이어져 ▼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가 그렇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적을 버리면서 적어도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당적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위장 탈당’, ‘철새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조속히 당적을 선택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지입장을 밝힌 통합신당에 들어가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까지는 신당에 입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고, 심지어 계속 무당적(無黨籍) 대통령으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각의 주장이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을 더욱 혼란케 하는 것은 이들의 주장에 정파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당적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각 정치세력은 정략적 계산만 앞세울 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잊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 조속히 통합신당에 입당하라고 주장하는 측은 통합신당을 하루빨리 ‘노무현당’으로 낙인찍고 싶어 한다. 반대측은 대통령의 인기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낙인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생각해 입당을 늦추려고 하는 것 같다.

정치의 본분을 잊고 정략적인 주판알 튀기기에 빠져있다는 점은 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탈당은 했지만 입당 여부는 정기국회가 끝난 후에 보자는 식의 유보적 태도는 현시점에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반영한 고육책(苦肉策)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면 그 판단기준이 정당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어려움이 한국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노 대통령의 선택은 달라야 한다.

조기 입당을 하건, 무당적으로 남건 어차피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러나 어정쩡한 태도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 정기국회 후에 상황이 좋아지면 입당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무당적으로 남겠다는 식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한국 정치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경제에 부담만 준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당적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임기 끝까지 당적을 갖지 않고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갈지에 대해 명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은 조건부가 아닌 절대적 결단이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건 노 대통령은 하루빨리 비서실의 정무라인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처리 때에도 드러났지만 청와대 정무라인은 막연한 낙관론에 빠져 뒷짐만 지고 있었다. 민주당의 분당으로 여야가 불분명해진 상태인데도 어느 누구 하나 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책임지고 달려들지 않았다.

▼정무라인 재정비 대화정치 복원을 ▼

한나라당의 호의는 애초 기대하기 어려웠고, 민주당은 노 대통령에 대해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사실상의 여당인 통합신당 역시 다수 의원이 표결에 불참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청와대마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이러한 ‘정치 실종’ 사태는 정무라인의 존재이유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현시점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건 다수파가 되기는 쉽지 않다. 통합신당에 입당하면 제3당의 대통령이 될 것이고, 무당적으로 남으면 더욱 소수파가 될 것이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청와대의 정무기능 활성화를 통한 대화정치의 복원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소신인 대화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