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석/국제 감시대상 된 ‘盧 언론관’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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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언론인협회(IPI)가 한국을 3년 연속 ‘언론자유탄압 감시대상국(Watch List)’에 올려놓았다. IPI는 2001년 우리나라를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했고, 작년에 이어 15일 열린 올해 총회에서도 이를 해제하지 않았다. 이번 총회에서 IPI는 주요 독립 언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지속적인 공격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국 대통령이 언론을 향해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자유의 신장을 목표로 삼는, 권위 있는 국제 언론단체가 재확인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뒷걸음 치는 한국 언론자유 ▼

IPI는 이에 앞서 4월 17일에도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이 경고 또는 경계(alert)를 요하는 상황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IPI는 이 보고서를 ‘국제표현자유교류(IFEX)’ 산하 ‘행동경고 네트워크(AAN)’에 제출해 40여개국의 인권단체가 참고하도록 했다.

IPI와는 별개로 미국의 언론인 보호단체인 CPJ(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도 최근 한국기자협회 대표들에게 노 대통령이 동아일보 등 언론사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는 전언이다. CPJ는 제3세계의 분쟁지역이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취재 도중 구금 억류 또는 부상 등의 위험에 처한 기자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이 단체가 한국의 대통령이 소송을 낸 배경, 대통령과 언론사가 긴장관계에 처한 원인 등을 질문했고 그것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적인 망신거리다.

막강한 권력을 쥔 대통령이 앞장서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언론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심각하다. 언론은 강제적인 조사를 하거나 수표를 추적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 그 때문에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공개적인 수준에서 논의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언론의 당연한 임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언론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감시의 대상이 돼야 할 공직자들이 역으로 언론을 공격하도록 격려 고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과 IPI의 인연은 자유당 치하였던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여러 차례 IPI 가입을 시도했으나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보류되다가 4·19 이후에야 간신히 가입이 허용됐다. 그 뒤 우리의 경제발전과 언론자유 신장으로 IPI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1995년 5월에는 서울에서 IPI 총회를 개최하는 나라로 지위가 격상됐다. 서울총회는 역대 대회 가운데 최대규모인 45개국 500여명의 언론인이 참가했고, 한국은 ‘감시대상’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의 언론자유를 감시할 ‘파수꾼’ 자격이 있는 언론자유국으로 ‘국제공인’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부터 한국은 또다시 언론자유가 위협받는 국가로 뒷걸음질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언론을 대상으로 여러 조치와 발언들을 내놓아 논란을 일으켰다. 언론중재위에 중재신청 건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급기야는 대통령이 신문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사태로까지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힘을 지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도 했다. 그러나 언론은 최고 권력자를 박해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권력은 언론을 박해할 수 있어도 언론이 권력을 탄압하거나 짓밟을 힘은 없다.

▼IPI 결의안 의미 직시해야 ▼

권력은 언론을 탄압할 수단을 얼마든지 갖고 있다. 권력은 언론인을 정부 고위직 등에 영입할 수도 있다. 채찍과 당근을 양손에 쥔 것이 권력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에 더해 언론의 비판에 대응할 수 있는 자체 매체도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 브리핑’과 인터넷 매체인 ‘국정신문’이 그것이다.

또 우리는 정부가 권력자에게 언제나 따라붙게 마련인 우호적인 매체를 통해서 여론을 조작하는 경우도 보아 왔다. 국제언론단체가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한 한국 언론의 현실을 노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IPI가 한국의 언론 탄압을 우려한다는 취지의 결의문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흘려 넘길 수 없는 사태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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