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벌써 ‘왕수석’ 얘기 나오나

  • 입력 2003년 5월 2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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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이 출범한 지 3개월밖에 안돼 ‘왕수석’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대통령 측근 중심의 인치(人治)와 청와대로의 권력집중이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된다. 국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참여정부에서는 시스템이 1인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만 해도 왕수석 후보로 정책수석비서관이 거론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이 비서실장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은 노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에 힘입은 게 분명하다. 노 대통령이 ‘눈빛만 바라봐도 서로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그는 요즘 고유의 직무 범위를 벗어나 주요 국정 현안에 관여하는 일이 잦다고 해서 ‘대통령 대리인’이니 ‘실세 2인자’니 하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민정수석비서관실의 본업은 공직기강점검 인사검증 친인척관리 민심동향파악 등으로, 문 수석비서관이 관여한 화물연대 파업사태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는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수석비서관 수가 줄어든 데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청와대측의 설명이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민정수석실로 권력의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어 인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인치는 분야별 단계별로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있는 시스템행정과는 정면 배치된다. 관계 공무원들이 위만 바라보다 국가대란을 초래한 화물연대 파업사태나 정부의 갈등조정력 부재로 교육대란을 부른 NEIS 문제는 시스템 이상을 알려주는 경고였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정부의 무신경이 더욱 심각하다.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국정책임자들이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은 영 어색하다. 서둘러 시스템을 복원하지 않으면 악순환의 반복으로 국정위기가 상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인치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DJ정부의 교훈을 벌써 망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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