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회담 기조발언 공개 속셈]核문제 희석의도 南떠보기

  • 입력 2003년 5월 22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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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진행된 각종 남북회담 도중에 회담 기조발언을 공개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부분의 회담을 비공개로 진행됐던 관례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박창련 북한 국가계획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20일 5차 경협추진위원회 첫날 전체회의에서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적인 조치요 하면서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 남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 대표단을 위협한 내용은 같은 날 북한 중앙방송에 그대로 공개됐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남북회담장을 선전전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며 “한편으로는 각종 회담을 치르면서 우리 언론의 생리나 보도형태 등에 대한 감(感)을 잡은 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도 북한이 기조발언 중 일부 내용을 공개했던 사례가 없지는 않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첫 남북회담인 1998년4월 베이징(北京) 남북 차관급당국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은 기조발언문을 한국 기자단에 건네기도 했다.남북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1차 장관급회담(2000년7월)에는 남북이 공동보도문을 합의하기 전에 중앙방송이 북측 제안내용을 일부 소개했다.

다만 두 사례는 정권교체 직후거나, 남북간 새로운 회담문화가 정착되기 전의 타성이 반영됐다는 게 정부당국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 발생이후 두드러진 최근의 변화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게 회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대표단의 강경한 태도를 사전에 누그러뜨리고 회담의 초점을 핵문제에서 교류협력 등 다른 방향으로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1월 서울에서 열린 9차 장관급회담에서는 북한 수석대표인 김영성 내각 책임참사가 회담을 공개리에 진행하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지난달 27일 평양에서 열린 10차 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 중앙통신은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에 남북민간선박 영해 통과 등 교류협력에 초점을 맞춘 북한 제안을 담은 기조발언 전문을 보도하는 등 역공세의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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