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양항 물류마비]'盧 親勞성향' 눈치보다 일파만파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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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국가적인 갈등 사안에 대한 정부 당국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관련 수석비서관들이 제각각 따로 움직이면서 ‘컨트롤 타워’ 부재 속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부처 현안을 조율하는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도 사태가 발생한 뒤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섰고, 관련 부처는 서로 “엄밀히 말해 우리 일이 아니다”며 서로 발뺌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위기대응 ‘컨트롤 타워’가 없다=사태의 전모를 제때 정확히 파악하고 관련 부처간 역할분담을 지휘할 종합지휘기능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11일 국무회의에서 “어떻게 보면 정무수석 일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넓게 보면 민정수석도 관련되고…”라면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실제 청와대는 민정수석 정무수석 국정상황실 정책상황실 등에서 제각각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동향을 챙기는 정도였지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한데 모아 관련 부처에 지시하는 ‘사령탑’ 역할은 실종된 상태였다. 심지어 주무 수석실인 정무수석실에는 노조담당 직원이 한명도 없다.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은 “정무수석실과 민정수석실 국정상황실 정책상황실 등이 각각 기능이 중첩돼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이는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부처를 관할하던 수석제도를 폐지하면서 생긴 업무공백 현상을 대체할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경제부처 한 국장은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종합적인 상황파악과 지휘기능이 실종되면 국정에 혼란이 오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부처 책임 떠넘기기=화물연대 파업이 여러 부처가 얽혀있는 복합적 갈등 사안이라는 점도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한 요인이다. 심지어 관련 부처 장관들은 6일 국무회의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화물운송은 건설교통부 소관이며 화물연대는 노동부, 부두문제는 해양수산부, 치안은 행정자치부 등으로 쪼개져 있어 어느 장관도 책임지고 나설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고위 관계자는 “예전에는 청와대 담당수석과 국가정보원 등에서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직접 지시하며 조정기능을 했지만 지금은 이런 기능이 전무한 상태”라면서 “부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면 청와대 어느 곳에 보고해야 할지 모르고 청와대 비서들도 자기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도 “국무조정실장 아래 두도록 돼 있는 2명의 차관인사마저 정부직제 개편안이 처리되지 않아 임명하지 못하는 등 부처간 업무조정에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여기다 화물연대 노조의 12개 요구사항이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등에 걸쳐 있고 주관은 건교부, 피해 집계는 산자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부처 ‘대통령 눈치 보기’= 일선 부처의 ‘대통령 눈치 보기’ 현상도 늑장 대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친노조 성향이라고 해서 부처에서 미적거리며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부처가 대통령의 ‘코드’를 제대로 못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총리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침이 먼저 있어야 부처가 움직이게 돼 있다”며 “청와대가 가만히 있는데 어느 장관이 나서서 일을 풀려고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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