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정부 대응카드는]"美입장 지켜봐야" 엉거주춤

  • 입력 2003년 4월 27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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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3∼2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미국 중국과의 3자회담에서 핵무기 보유를 시인함에 따라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한 외교안보정책을 새로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 전략과 남북관계, 군사적 대응태세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점검한다.》

▼외교적 해법▼

외교통상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해온 미국이 이미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을 전제로 대북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미국 일본 등과의 공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의 대북정책 공조는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상황 인식 아래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며 “미국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지켜본 뒤 긴밀하게 협의해 서두르지 않고 평화적 외교적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북정책을 놓고 강·온파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북핵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실질적인 관건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일단 미국도 3자회담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당장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끝내 핵에 집착해 미국의 강경파들이 강경한 대북제재를 요구하고 나설 경우엔 외교부의 입장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외교부의 다른 관계자는 “다음달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러나 구체적인 해법은 좀 더 시간을 갖고 협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 일본과의 3국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다음달 중에 열 예정이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27일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5월 중에 한미일 감독그룹 회의를 여는 데 합의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정부는 또 앞으로 북핵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는 경우에도 이는 평화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어야지, 강경한 제재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는 28일 노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미 일 등과의 공조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힐 예정이다. 그러나 외교부 일각에선 북한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 같은 외교적 노력은 결국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對北 지원▼

통일부는 북핵 파문에도 불구하고 27일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제10차 남북장관급회담 등 남북대화 채널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대북 여론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대북 지원엔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 관계자는 “남북대화를 북핵문제 해결 여건을 마련하는 통로로 활용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끊어져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당초 대북 지원과 개성공단 착공 등이 주 의제였던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정부가 27일에 이어 28일에도 북핵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시인 등 돌출 행동이 남북관계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내심으론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우선 쌀·비료의 대북 지원문제만 해도 북핵 파문으로 격앙된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정부가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한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은 17일 적십자 채널을 통해 비료 지원을 요청한 데 이어 이번 회담에선 식량 지원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는 파종기에 맞춰 비료를 제공할 경우 북한의 식량 증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20만t 정도를 적기에 지원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왔다. 식량의 경우 지난해와 비슷하게 쌀 40만t 정도를 차관 형식(연리 1%, 10년 거치, 20년 상환)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해결의 실타래를 찾지 못하고, 유엔 등에서 대북제재가 논의되는 상황이 빚어질 경우엔 대북 대화 채널은 유지되더라도 대북 지원과 경협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군사안보 대응▼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시인함에 따라 우리의 안보 전략과 군사적 대비 태세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27일 “북한의 핵 보유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를 가정해 군사 안보전략의 수정이나 개편을 거론할 순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신중한 입장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로 입증되면 경제 외교적 제재는 물론 다양한 군사적 압박을 통해 핵무기 폐기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밀유도무기 등 첨단무기 획득 스케줄을 최대한 앞당기고 한미 연합전력의 강력한 무력시위를 통해 공세적 억지력을 강화토록 안보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유례없는 안보 위기인 만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고강도의 군사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이정민(李正民)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북 선제공격이 아닌 다양한 강도의 군사적 경고를 잘 활용하면 북한도 반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초 남한에서 철수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 미국에 ‘핵우산’을 요청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태우(金泰宇) 한국국방연구원 박사는 “핵 위협에 대한 유일한 억지력은 상호확증파괴전략(MAD·Mutual Assured Destruction·핵 공격을 받을 경우 공격 전후 남은 핵무기로 적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전략)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등 군사적 강경책은 전면전으로 직결되고 전술 핵무기 재배치나 핵 무장은 더 큰 위협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현근(尹炫根) 국방대 교수는 “현재로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기구를 통한 제재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북핵 보유를 가정한 대처 방안을 강구하기에 앞서 북한이 우선 핵무기를 포기토록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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