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진/北核 '안보우선'의 접근 필요

  • 입력 2003년 4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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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이징 회담에서 나온 북한 대표의 핵무기 관련 발언은 북한 정부가 처음으로 대미국 요구와 핵무장 강행 방침을 명백히 연계시켜 미국을 압박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미국은 북한 대표의 발언과 제안을 면밀히 검토한 뒤 평화적 외교적 해결을 계속 모색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무력-봉쇄-지원 세가지 시나리오 ▼

그러나 북측의 핵무기 보유 및 ‘실험’ ‘반출’ 등이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는 식의 북한 대표의 발언은 미국의 심리를 극도로 자극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대북 불신감과 경계심을 심화시키고 협상파에 큰 타격을 주었다. 북한의 정권교체 없이는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이미 다수의 인사들이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의 협의와 중국 러시아 등 기타 관련 국가들과의 조율을 거쳐 본격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일정기간 북한의 핵 포기에 관한 진의 파악과 설득을 위해 노력할 것이나 조만간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 나아가 철저한 봉쇄조치로 북한을 압박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북한의 행동에 따라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북한 정권의 교체까지 추구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 정책의 전망은 국제정세는 물론 조지 W 부시 정부 중추세력의 가치관과 국제정치관, 북한관, 미국 국내정치의 동향 등에 관한 종합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말한 미국의 대북 정책의 전제에는 북한이 핵무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한 인식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인가를 검증하기 위한 외교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 포기를 결단한다면 정치적 타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과연 핵무장을 포기할 수 있을까. 미국식 표현을 쓰자면 이것은 바로 ‘100만달러짜리 질문’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게 될 상황은 상정하기 어려우나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①미국의 대북 무력 공격이 확실하다고 북한이 판단하고 ‘핵 포기냐, 전쟁이냐’의 선택에 직면했을 경우.

②미국 주도하에 국제사회의 주요 국가들이 대북 경제 제재, 봉쇄 조치에 공조해 북한 경제가 마비되는 등 정권붕괴의 위험성이 높다고 북한 지도부가 판단할 경우.

③협상을 통해 미국 및 관련 국가들이 제공하는 대가(代價)가 핵 포기를 정당화하고 결단할 수준이라고 북 지도부가 판단할 경우. 특히 핵 포기에 수반하는 검증절차가 북의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평가를 할 때.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장에 대한 집념이 강해 핵 포기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나 ①과 ②의 경우 북의 핵 포기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한 지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돌발적이거나 오판에 의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전면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해 전쟁으로 가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북-미간 군사적 대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무력 대결의 위기에 직면한 양국 지도부가 동시에 정치적 타결을 모색할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도 있다. 사실 양측에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쌍방의 핵심적 이익을 절충한 일괄 타결이 가능할 것이다. ③의 시나리오의 실현을 위해 관련 국가들의 진지한 외교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민족지상주의 벗어나야 ▼

당사자 중 하나인 한국은 어떤가. 김대중 정부의 정책이나 이를 계승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도 북핵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국가이익의 핵심은 안전보장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한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며 한국의 국가 이익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의 중추 세력이 그들의 이념적 속박이나 민족지상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고 정치권력 차원의 지나친 고려를 극복해 외교 안보전략을 과감히 수정, 국익 추구에 나서야 북한 핵문제 해결에 의미 있는 공헌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겸 인하대 초빙교수·국제정치학

박은선기자 sunney7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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