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뒤늦게 취임사면 하나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특별한 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권력분립원칙의 예외인 사면권이 남용되는 것에 대한 견제여론이 비등해서였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작년 말 퇴임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봐주기 사면’을 단행한 것에 대한 따가운 비판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면 기준을 엄격히 해 법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시국·노동사범에 대한 대규모 특사가 예고되고 있으니 두달 만에 상황이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의 사면관이 바뀐 것인지 궁금하다. 이달 말 특사단행은 시기로 보나 사회 분위기로 보나 어색한 구석이 많아서다. 이달 말이 무슨 국가적 경축일도 아니다. 또한 지금은 4·19 기념집회까지 따로 열릴 정도로 보혁(保革) 갈등이 심상치 않은 시기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미뤄놓은 취임 사면을 단행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말 “사법적 처분의 존엄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통합도 중요한 가치이다”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관련자를 비롯한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 방침을 시사했다. ‘뒤늦은 취임 사면’을 보면서 노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가 연상된다.

사회적 통합은 시대적 당위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이후 20여년간 40여차례에 걸친 사면만 해도 모두 이 같은 명분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누구나 씁쓸할 것이다. 나아가 ‘선심성 사면’ ‘정치적 사면’ ‘끼워넣기 사면’ 등 무원칙한 사면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따져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번 사면 대상자는 대부분이 현 정권의 주도세력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한층 크다. 오히려 코드가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사회적 통합 의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그와 함께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보혁 논란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