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독과점규제, 美-日의 경우는…

  • 입력 2003년 4월 1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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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판대에서 한 시민이 신문을 펼쳐 보고 있다. 미국에선 정부가 언론에 대해 규제입법을 하는 경우는 없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의 가판대에서 한 시민이 신문을 펼쳐 보고 있다. 미국에선 정부가 언론에 대해 규제입법을 하는 경우는 없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정부의 신문정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은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답변에서 신문공동배달제에 대해 문화산업진흥기금 지원 방침을 밝혔다. 또 ‘특정언론의 과다한 시장점유율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신문시장에 개입하겠다’고도 밝혔다. 과연 일부 사기업의 영업행위를 위해 정부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인지, 언론이 독과점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알아본다.》

▼美 "신문규제는 수정헌법 위배"▼

미국에선 언론 개혁을 위해 구성된 허친스 위원회가 1947년 보고서를 내고 ‘언론이 공익을 위한 비판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신문에도 독점규제법을 적용해 소유집중을 막을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에 따라 법제화되지 못했다. 허친스 보고서도 언론의 자율규제가 최선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처럼 미국에선 정부가 언론에 대해 규제입법을 하거나 통제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세무조사는 세금에 관한 것이며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관련기사▼

- 한나라 "특정紙 공동배달 지원은 언론통제 발상"

개수 기준으로 미국 신문사의 75%가 몇 개의 언론체인의 소유로 돼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없다. 그중 나이트 리더나 가네트 등 체인은 신문사와 방송사를 여러 개 갖고 있다. 또 NBC 방송과 AOL 타임워너는 제너럴 일렉트릭(GE) 소유이며 ABC와 ESPN은 디즈니가 소유, 경영 중이다. 바이애컴사는 CBS와 MTV 등 여러 방송 광고 영화회사 등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방송사가 직접 경영하는 방송국을 종전에는 5개로 제한했으나 이를 9개로 늘리는 등 언론 산업이 대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신문 배달에 관해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다. 미국 전체에서 2개 이상의 신문이 발행되는 도시는 20여곳에 불과하다. 한국과 같은 치열한 판매경쟁도 없고 공동배달 등을 구상할 필요도 없다. 신문은 대부분 광고수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무가지도 많으나 이에 대한 규제는 없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日 "신문 공동판매 30년전 폐지"▼

일본에서 신문의 공동판매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부터 약 10년간 실시된 바 있다. 당시 신문사들은 41년 조직된 공판연맹을 통해 판매 활동을 했으며 종전과 함께 연맹이 해체된 뒤에도 한동안 신문 판매를 이 조직에 의존했다.

195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판연맹 조직을 통한 신문판매는 독점금지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각 신문은 요즘처럼 독자적인 보급망을 갖추고 판매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문용지와 구독료에 관한 통제가 풀린 것도 자유경쟁 부활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신문의 판매 및 배달 방식은 신문사가 경영상의 장단점 등을 판단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등 종합지들은 자체 보급소를 통해 신문을 배달하지만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타 신문사 판매망을 이용해 신문을 배달한다. 예컨대 수도권의 핵심 지역에서는 자체 보급망을 운영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수가 적은 지방에서는 ‘판매의 아웃소싱’ 차원에서 해당 지방의 유력지 조직을 이용하는 것.

신문사의 경영에 관한 사항은 기본적으로 업계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정부가 공동배달제를 강요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지원금을 주는 일은 없다.

일본은 또 업계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독점금지법상의 예외 대상으로 신문업계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55년 독점금지법 내용에 신문업계에 대해 ‘특수지정’이란 항목을 두어 ‘차별정가(한 개의 신문이 지역과 상대에 따라 정가를 달리 붙이는 것)’를 금지하고 있다.

자유시장원리에 따르면 도쿄 시내에 배달되는 신문과 오키나와 섬에 배달되는 신문의 가격은 운송비 등에서 차이가 나므로 당연히 달라야 한다. 이 가격을 똑같이 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유시장원리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업계에 예외를 인정한 것은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을 방치하면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이 커 자본 여력이 있는 큰 신문사가 신문 가격을 대폭 할인해 독자를 장악하면 규모가 작은 신문은 아무리 좋은 내용을 실어도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 이는 신문이 가진 공적 기능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신문이 일반 상품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일정 규모의 경품류 제공을 허용하고 있다. 감독은 신문공정거래협회의 규약에 따라 신문업계가 자율 규제하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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