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핵위기땐]北 IAEA탈퇴선언 벼랑끝 전술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8시 32분


94년 북핵위기 사태일지
1993. 2국제원자력기구(IAEA), 북에 미신고 핵시설 2곳 특별사찰 수용 촉구
1993. 3북,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1993. 5유엔안전보장이사회, 특별사찰 수용 및 NPT 탈퇴 철회 대북 결의안 채택
1993. 6북-미 1단계 고위급 회담
1993. 7북-미 2단계 고위급 회담(제네바, 북한 IAEA 핵사찰 수용)
1994. 5∼6미국,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 검토
1994. 6북, IAEA 탈퇴 선언,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방북
1994. 7김일성 사망
1994. 7∼8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 체결
1994.11.1북, 핵활동 동결 선언-북핵 위기 해소

93, 94년 북핵 위기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꾀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북한이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93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영변 핵시설 2곳을 통해 수㎏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특별사찰을 북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북측은 특별사찰을 거부한 채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 위기를 고조시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그해 5월 북한의 사찰 수용과 NPT 탈퇴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 압박에 나섰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수 차례의 고위급 회담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94년 6월 IAEA 탈퇴를 선언하는 등 ‘벼랑끝 전술’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94년 여름 북한의 영변 핵시설단지에 대한 폭격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재개돼 북폭 위기를 넘긴 뒤 10월 북-미 제네바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돼 북한 핵문제는 일단 봉합됐다.

반면 이번 위기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한 비밀 핵개발을 시인한데서 출발했다. 국제적 약속을 파기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제네바합의에 따라 동결했던 핵시설에 대한 봉인을 제거, 핵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중유제공 중단에 따라 원자력발전을 위해 핵시설에 대한 봉인을 해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과 관련이 없는 폐연료봉 저주조와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봉인까지 제거한 것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董龍昇) 북한연구팀장은 “북한이 각종 핵 시설 봉인 해제에 이어 재처리까지 돌입하면할 경우 94년때 이상의 중대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며 “미국은 외교적 해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본격적인 대북 경제제재에 이어 군사적 조치를 고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北 핵시설 봉인제거 완료
- 북한 주민은 굶주리는데 왜 핵개발 하나?
- 盧당선자 北核인식-해법
- 北核 폐연료봉 재처리 '최후도박' 우려
- 美 , 北 무기금수-수출입금지 검토
- 94년 핵위기땐 北 IAEA탈퇴선언 벼랑끝 전술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