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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2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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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지지자들로부터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정치인, 솔직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정치인,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열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성격이 직정(直情)적이고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노 후보에 대해 이처럼 상반되고 대조적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그의 성장환경과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946년 경남 김해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노 후보는 자서전에서 농부였던 선친은 사람은 좋았지만 욕심이 없어 경제적으로 의지가 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반면 그의 모친은 생활력이 무척 강했으며 자식들에겐 몹시 자애로웠지만 남편과는 금실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또 노 후보가 무척 따랐던 법과대 출신의 형은 고시에 실패한 뒤 한동안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해 교편을 잡고 있던 형수와 갈등이 깊었다고 전한다. 결국 노 후보 집안의 남자들은 현실 속에서 힘없는 존재였다. 이 때문에 노 후보는 자신도 집안의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억눌리고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유기불안(遺棄不安)’이 무의식에 축적됐을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교 시절 노 후보는 친구의 새 가방을 이유 없이 찢고 같은 마을 아이들의 우두머리가 돼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조금 더 나은 아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은 ‘강한 어머니’에 대한 반발감이 외부로 투사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가 ‘사회적 강자’인 재벌개혁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도 이런 성장과정에서 싹튼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가 주변의 전언처럼 회의석상에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선호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도 무의식적인 콤플렉스의 영향 탓일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가 ‘돈버는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인생의 진로를 바꿔가며 개인적 행복보다 사회 변혁을 추구한 것이나 정치적 고비마다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보여준 것도 이 같은 ‘머더 콤플렉스’를 긍정적 방향으로 분출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정치에 입문하고 ‘청문회 스타’로 성장한 20대 후반 이후의 과정은 그의 머릿속에 ‘서민의식’과 ‘엘리트 의식’이 공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노 후보는 수위에게까지 인사하는 소탈한 자세를 보였고, 공무원들과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정책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당시 해양수산부 직원 가운데는 노 후보가 조직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서민의식’의 장점이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노 후보는 소설 ‘레미제라블’을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다. 동시에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평전인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썼다.
빵을 훔쳤다가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했던 장발장은 울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다리를 다치고 돈이 떨어져 밥값을 내지 못하자 주인 몰래 도망쳤다는 노 후보와 비슷하다. 반면 그가 매료됐던 링컨 대통령은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와 정치적 지향점을 상징한다. 결국 ‘레미제라블’이 그의 성장기의 굴곡을 반영한 것이라면 링컨 평전은 엘리트 대열에 올라선 그의 성공스토리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노 후보의 안정감 부족은 그의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유기불안의 표출로 보인다. 소위 ‘튀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고 지적을 받는 것은 자신 속에 내재된 불안심리가 자제력의 울타리를 넘을 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관 시절 그에 대한 공무원들의 평가를 감안한다면 일반인들이 우려하고 걱정하는 노 후보의 실제적인 과격성과 사고의 편협성은 과장됐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인으로서 노 후보는 가족주의에 따른 폐해나 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가족들이 부패에 자주 연루됐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랜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부자관계가 혈연이라는 ‘수직적 관계’보다 정치적 동지라는 ‘수평적인 관계’로 바뀐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노 후보는 정치적 탄압을 많이 받은 정치인도 아니고 그의 가족들도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탓에 비교적 끈끈하게 얽힌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반면 노 후보의 의식구조를 들여다보면 그가 집권할 경우 자칫 ‘정치적 온정주의’의 폐해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맺고 끊는 결단이 필요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이 신분을 감추고 성공해 나중에 변신한 마들렌 시장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하는 모습은 장관 시절 “불법이라 하더라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을 법으로만 제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원칙”이라는 말로 불법어로를 한 어민들을 적극 단속하지 않은 노 후보와 너무 닮았다.
따라서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른바 ‘밥그릇론’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온정주의, 나아가 이것이 포퓰리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노 후보가 이런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지 자못 궁금하다.
▼글쓴이 신용구박사▼

신용구(愼鏞9·40·사진) 박사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개인의 정신질환이 사회적 병리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정치인의 리더십과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역주의, 학벌주의 등의 병리현상은 지도자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즉 자녀가 부모의 영향을 받듯 시민은 모범적인 지도자상을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율성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병리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지도자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