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 '분권형 대통령제' 합의]DJP연합은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9시 06분


97년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DJP연합’은 1년 이상의 사전정지 작업과 4개월의 협상에 따른 진통의 산물이었다.

DJP 공조는 95년 지방선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민련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민주당 조순(趙淳)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 또 96년 9월 서울 노원구청장 보선 때 양측은 자민련 김용채(金鎔采) 후보를 단일후보로 공천했다.96년 12월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용환(金龍煥) 사무총장간의 ‘목동밀담’은 DJP연합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97년 7월부터 공개 협상이 시작됐으나 단일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지, 내각제 개헌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지 등을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결국 시간에 쫓긴 국민회의측의 양보로 10월25일 합의문 초안이 만들어졌고 26일 민주당 한광옥(韓光玉), 자민련 김용환 부총재가 내각제 개헌 시기 등 마지막 쟁점을 매듭짓는다. 김대중 총재가 27일 밤 김종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방문, 합의안을 최종 확인한 뒤 두 사람은 11월3일 “김대중 후보로 단일화하고, 집권시 총리는 후보를 내지 않는 자민련측이 맡는다. 99년 12월 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양당은 집권 이후 한동안 순조롭게 공동정부를 운영했으나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회의가 자민련의 개헌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내각제 개헌 약속은 끝내 파기된다. 여기다 개헌 의석(3분의 2)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당초부터 개헌추진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99년 7월 워커힐 회동에서 김종필 총재가 내각제 개헌 유보를 양해했으나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양측은 결국 결별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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